범문화 지향…인간세계 탐구/올 노벨문학상 받는 파스의 작품과 생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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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구 문예사조에 동양사상 접목/외교관 역임… 70년대 들어 우파로 선회 비판 받기도
『문인은 무릇 한 문화와 다른 문화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
85년부터 계속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다 이번에 멕시코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옥타비오 파스가 수상소감에서 강조하듯 그는 항상 국제적 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파스의 범문화적 교양은 그의 가계와 생애에서 우러나온다. 스페인­멕시코 인디언계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그리고 24년에 걸친 인도ㆍ일본ㆍ프랑스ㆍ스위스로의 외교관 편력이 그의 범문화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이것은 그의 작품속으로 흘러들었다.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이유로 밝혔듯 그의 시는 초현실주의라는 서구사조에서 출발하지만 멕시코 본래의 인디언문화와 인도 및 일본의 불교사상,그리고 중국의 노장사상을 덧붙였다. 이러한 그의 시세계는 그의 시작과정을 밝힌 76년에 발표된 4행시 『시』에서 잘 드러난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침묵하는 것,/내가 침묵하는 것과 내가 꿈꾸는 것,/내가 꿈꾸는 것과 내가 있는 것,그 사이』
구조주의ㆍ존재론ㆍ현상학ㆍ기호학ㆍ신화학 등 서구의 현대 문예이론에 정통하면서도 동양사상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그의 시는 때문에 난해하면서도 정신과 육체 삶과 죽음 사물과 언어를 포괄하는 일원론적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장서가인 조부의 서재에서 일찍부터 문학에 눈뜬 파스는 19세때 첫 시집 『야생의 달』을 펴냈고 멕시코 국립대학에 입학,법학을 전공하면서도 시와 평론,정치적 에세이를 왕성하게 발표했다.
45년 프랑스 주재 멕시코 대사관 근무를 시작으로 외교관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일본ㆍ인도대사로 부임하면서 동양문화와 본격적으로 만났다. 특히 한시ㆍ하이쿠 등에 직접 접하면서부터 그의 시는 초기의 신낭만주의와 현실 참여시에서 형이상학적 시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 기간중 그는 『언어 아래서의 자유』(49년),『태양의 돌』(57년),『일할 수 있는 날들』 등의 시집과 산문집 『고독의 미로』를 펴냈다. 「고독과 딱딱한 의식이라는 가면 뒤에서 몸을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인 허무주의자」라며 멕시코인을 묘사하고 있는 『고독의 미로』는 61년 영역돼 세계 문단의 주목을 끌었다.
또 『태양의 돌』은 멕시코의 아즈텍문명과 정복자 스페인을 문명사적으로 형상화,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시적 형상화가 곤란한 인류문화의 결실을 훌륭히 그렸다』며 극찬을 받았다.
68년 파스는 멕시코 올림픽 당시 멕시코 정부가 학생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것에 항의,외교관직을 사임했다.
37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프랑코 독재에 항거까지 했던 진보적 지식인이었던 파스는 그러나 70년대 들면서 스스로를 「남은 것은 환멸뿐인 좌파」라며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과 니카라과 좌익정권을 비판하는 우파로 급선회,멕시코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80년 미 하버드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파스는 81년 세르반테스 문학상과 84년 서독 서적판매상협회상 등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인터뷰에서 『내 작품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항상 나의 마지막 작품』이라며 89년 간행된 시집 『내면의 나무』를 꼽을 정도로 76세의 고령에도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는 파스는 『세기말을 구원하기 위한 「또 다른 목소리」란 시집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64년 재혼한 부인과 함께 멕시코에 살고 있는 파스는 76년 월간문예지 『귀환』을 창간,발행인을 맡고 있다. 10여권의 시집과 비평ㆍ에세이집중 우리나라에는 그의 대표시선집 『태양의 돌』이 민용태교수(고려대 서문학과)에 의해 번역돼 86년 청하에서 출판됐다.
작년 스페인의 카밀로 호세 셀라에 이어 스페인어권은 노벨문학상을 2년 연속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이경철기자>
□파스의 연보 및 작품

<연보>
▲1914년 멕시코시 출생.
▲국립멕시코대 졸업.
▲33년 첫 시집 『야생의 달』출간.
▲43년 동인지 『방탕한 아들』창간ㆍ주재.
▲62년 주인도대사 부임,68년 오르테스 대통령의 학생시위 탄압에 항의 사임.
▲69년 케임브리지대 교수 부임.
▲71년 하버드대 시학 교수.
▲77년 멕시코 국가문학상 수상외 스페인 비평가상,T.S.엘리어트상 등 수상.

<주요작품>
▲시집 『언어 아래서의 자유』(49년)
▲시집 『태양의 돌』(57년)
▲시집 『부정의 계절』(58년)
▲산문집 『고독의 미로』(61년)
▲시집 『후앙 소리아노의 그림』『내면의 나무』(89년)
마을
돌은 시간이다
바람은
수세기를 거쳐 온 바람
나무들은 시간이다
사람들은 돌이다
바람은
고자리서 맴돌고 있다,그러다 묻힌다
돌의 하루 속에
물은 없다 그러나 눈만 반짝인다

<민용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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