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5도 남극에 수박 주렁주렁, K-스마트팜의 마법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20

업데이트 2021.11.27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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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11면

[SPECIAL REPORT]
K-농업, 식량 위기 해결 씨앗 뿌리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실내농장에 각종 잎채소와 열매채소가 자라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남극세종과학기지 실내농장에 각종 잎채소와 열매채소가 자라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최근에 수확한 애호박으로 애호박전과 된장찌개를 만들어 대원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습니다. 삼겹살에 잘 자란 고추도 곁들여 먹었고요. 남극 얼음으로 만든 수박 화채는 정말 특별했죠”

지난 1월부터 남극에서 생활하고 있는 윤의중 남극세종과학기지 34차 월동대장의 얘기다. 이 기지에 머무는 17명의 월동연구대원은 최근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수확한 신선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됐다. 농촌진흥청과 극지연구소가 지난해 10월 아라온호에 실어 보낸 실내농장이 본격 가동되면서다. 올 초 남극 현지에 도착한 실내농장은 두 달 동안 설치와 시운전을 마치고 5월 7일 첫 파종을 했다. 대원들은 6월부터 실내농장에서 직접 수확한 신선 채소를 찌개, 국, 무침 등 다양한 먹거리에 이용하고 있다.

남극에서는 채소가 귀하다. 우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채소 재배가 불가능하다. 남극은 지상에서 가장 건조한 하얀 사막이라고 불린다. 지구 담수의 약 70%가 모여있지만 연중 강수량이 500㎜에 불과해 매우 건조하다. 남극에서도 따뜻한 축에 속하는 세종기지의 계절별 평균 기온은 여름(10~3월)에 영하 2.5도, 겨울(4~9월)에 영하 5도로 낮다. 겨울 혹한기 때는 최저기온이 영하 25.6도까지 내려간다. 신선 채소를 먹으려면 인접국을 통해 들여와야 한다. 실제로 극지연구소는 남극 세종기지 부근 칠레기지를 통해 연평균 4차례 칠레산 사과, 배, 바나나 등 과일과 감자, 당근, 양파 등 채소를 보급하고 있다. 하지만 채소와 과일은 장기간 보관이 어려워 부족할 때가 자주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직접 기른 채소 먹어

수확한 애호박을 넣어 끓인 된장찌개. [사진 농촌진흥청]

수확한 애호박을 넣어 끓인 된장찌개. [사진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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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주변 기지와 왕래가 중단돼 6개월 넘게 신선 식자재 보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윤의중 대장은 23일 중앙SUNDAY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기지 간 초대도 잦았고, 체육대회나 저녁 식사를 하며 우애를 쌓았는데 지금은 타 기지와 접촉이 없다”고 전했다. 물자 공급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채소의 원활한 보급도 어려웠다. 현지에서 직접 길러 먹는 방안이 제시됐다.

농진청과 극지연구소는 남극세종과학기지에 새로운 실내농장을 계획했다. 농진청은 2010년에도 수출 컨테이너를 엽채류 재배 식물 공장으로 개조해 보낸 바 있다. 여경환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사는 “2010년에 보낸 실내농장이 노후화돼 작물 재배가 어려워져 새로운 실내농장 설비를 마련했다”며 “월동 연구대원들이 원하는 작물을 키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10년 전에 보낸 실내농장에선 상추 등 잎채소만 재배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실내농장은 잎채소와 더불어 애호박·토마토·수박 같은 열매채소까지 재배할 수 있도록 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농진청은 월동 대원들의 선호를 고려해 추가 재배 작물을 선별하고 재배 시스템을 구축했다.

푸른 식물 재배로 대원들 심리 안정도

남극 실내농장의 외부 전경. [사진 농촌진흥청]

남극 실내농장의 외부 전경. [사진 농촌진흥청]

실내농장은 40피트(12×2.4m) 컨테이너 2동을 합쳐 만든 일종의 스마트팜이다. 발광다이오드(LED)를 인공광으로 이용하고, 남극 실내농장 환경 정보가 클라우드 기반 데이터베이스에 수집된다. 또 농진청이 농장의 재배 환경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작물 재배에 어려움이 없도록 도움을 준다. 남극 실내농장을 모니터링하는 이현동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배양액을 공급하는 양액기 제어, 설정값 등 처음에는 기계 설비에 관한 질문이 많았지만 시스템 설비가 구축되고 나서는 대부분 자동화돼 있어 큰 어려움 없이 재배하고 있다”면서도 “최근에 pH 값이 낮아져 극지연구소를 통해 pH 값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전달했다”고 했다.

주렁주렁 자라고 있는 수박. [사진 농촌진흥청]

주렁주렁 자라고 있는 수박. [사진 농촌진흥청]

실내농장이 본격 가동되면서 대원들은 다양한 신선 채소를 맛볼 수 있게 됐다. 월동대원들은 6월부터 상추·케일 등 잎채소를, 7월부터는 오이·애호박·고추 등 열매채소를 수확했다. 8월 중순에는 토마토와 수박도 수확했다. 윤 대장은 “잎채소와 고추, 방울토마토는 여러 차례 먹을 양을 수확했고, 애호박은 6개, 수박은 4개나 수확했다”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딸기와 미나리도 재배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남극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29개국이 83개 기지를 운영하고 있고 그중 일부 기지만 신선 채소 공급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잎채소와 열매채소를 동시에 재배할 수 있는 실내농장이 있는 연구기지는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 남극세종과학기지가 두 번째다.

남극에서 수확한 열매채소. [사진 농촌진흥청]

남극에서 수확한 열매채소. [사진 농촌진흥청]

채소 재배는 대원들의 심리 안정에도 도움이 됐다. 강성호 극지연구소장은 “장기간 고립된 환경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이 농작물을 재배하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윤 대장도 “남극은 주위가 온통 바위와 흙이고, 특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모두 하얗게 변한다”며 “이때 실내 농장에 들어가면 여러 종류의 꽃과 열매, 푸른 채소를 볼 수 있어 전혀 다른 세상인 느낌이 들고 잠시나마 남극이라는 걸 잊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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