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벼 개량한 세네갈 ‘이스리’ 수확량 기존 쌀의 2배…세계 곳곳 한국식 녹색혁명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22

업데이트 2021.11.2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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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08면

[SPECIAL REPORT]
K-농업, 식량 위기 해결 씨앗 뿌리다

코피아센터 관계자와 세네갈 현지인들이 신품종으로 개발된 쌀 ‘이스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코피아센터 관계자와 세네갈 현지인들이 신품종으로 개발된 쌀 ‘이스리’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농촌진흥청]

한 나라를 상징하거나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꽃을 국화(國花)로 정한다. ‘벼’가 국화인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세네갈이다. 서아프리카의 가장 끝에 위치해 대서양에 접해 있는 세네갈은 1인당 GDP가 1400여 달러(2020년 기준) 밖에 안되는 빈국이다. 이 나라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식량 부족으로 국민이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주식이 쌀로 서아프리카 최대 쌀 소비국인 세네갈은 자급률이 낮아 연간 필요한 양의 절반 이상을 외국에서 수입해(연간 80여만 톤) 먹고 살았다. 국화를 벼로 정할 정도로 쌀농사가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작물이지만, 아프리카의 건조한 기후와 불리한 토양 여건 그리고 낮은 수준의 농업 기술 등으로 항상 식량난에 허덕였다.

“한국서 온 ‘이스리’ 세네갈에 내린 축복”

[세네갈·2020(조성 연도)·땅콩,양계(품목)] 성과 : 복합영농으로 땅콩 생산량 52.9% 증가, 계란 산란율 3.9%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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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정 탓에 세네갈 정부는 오래전부터 식량 문제 해결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고 노력해 왔지만 오랫동안 큰 성과는 없었다. 수입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세네갈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세네갈 정부는 1만3000㎞나 떨어진 대한민국에 SOS를 쳤다. 평소 한국의 발전된 농업기술을 눈여겨보던 세네갈 정부는 2016년 한국 농촌진흥청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침 농진청은 2010년부터 아프리카 23개국이 참여한 한-아프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회의체인 ‘카파치’(KAFACI)를 운영하고 있었다. 카파치는 참여 회원국과 함께 현지 풍토와 여건에 맞는 농업기술을 개발해 보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세네갈 측의 절박한 요청을 받은 농진청은 카파치를 통해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사업은 카파치가 ‘아프리카 벼 연구소’ 등 3개 국제기구와 손을 잡고 2016~2025년까지 10년 동안 아프리카에 다수성 벼 품종 개발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세네갈도 이 사업에 참여했다.

세네갈의 식량 갈증을 해결한 것은 바로 한국에서 바다 건너온 ‘통일벼’였다. 통일벼는 1960년대 중반 국내에서 시험재배를 거쳐 1970년대 초부터 전국에 보급된 벼 품종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한국인에게 큰 힘이 됐던 통일벼가 50여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서아프리카까지 전해진 것이다. 농진청은 통일벼를 아프리카 기후와 토양에 적합하게 품종 개량 연구를 진행했다. 2017년 그렇게 탄생한 세네갈형 통일벼 품종이 ‘이스리’(ISRIZ)다. 이스리-6, 이스리-7로 이름 붙여진 새로운 벼 품종은 한국의 통일벼 품종인 ‘밀양23호’ ‘태백’을 가져가 현지에 맞게 적응 시험을 통해 탄생했다. 품종 등록 후 2018년에 세네갈 다가나 지역의 음부벤 마을에서 첫 재배가 이뤄졌다. 이스리의 재배 결과는 놀라웠다. 단위면적(㏊) 당 생산량, 품질 등 모든 면에서 기존에 세네갈 현지에서 전국적으로 재배하고 있던 사헬(Sahel)을 뛰어넘었다.

세네갈 농업연구청의 벼 육종가인 오마르 은다우파예씨는 “사헬보다 수확량(2배)과 도정률의 높고 밥 맛도 월등히 좋아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평했다. 현지 시장에서도 이스리의 가치는 높게 평가받는다.

이스리는 ㎏당 세네갈 돈으로400세파프랑(한화 약 800원)에 거래된다. ㎏당350세파프랑(한화 약 700원)인 사헬보다 비싸게 팔리고, 현지에서 가장 비싼 수입쌀이라는 ‘바스마티’와 비슷한 가격에 팔린다. 가격은 비싸지만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워낙 높아 한 번 맛을 본 이들은 이스리만 찾는다고 한다. 이에 따라 현지 농가에서 이스리의 재배면적은 매년 늘고 있다. 2018년 500㏊에서 2019년 2000㏊, 2020년 6000㏊로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의 통일벼가 먼 이국땅인 아프리카에서 제2의 녹색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현지 여성단체 코디네이터로 활동 중인 은다에 씬 뚜레씨는 “한국에서 온 ‘이스리’는 세네갈인들에게 내린 축복”이라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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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뿐 아니라 아프리카 각국으로 한국의 쌀 품종은 확산 중이다. 농진청은 그동안 19개 나라에 맞는 쌀 품종 55개를 개발했다. 말라위(2개), 말리(1개) 등에서 신품종 등록을 완료했고, 우간다·케냐·가나에서도 8개 품종이 개발된 상태다. 다른 9개국에서는 37개 품종의 지역 적응시험이 추진 중이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는 농촌 지역의 도시화와 급속한 인구증가로 쌀 부족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벼를 재배하는 아프리카 39개국 중 21개국이 절반에서 거의 90% 가까이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다. 한국이 진행하는  ‘아프리카 벼 개발 파트너십 사업’은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벼 품종과 농업기술 개발 프로젝트는 아프리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중남미 국가인 파라과이에서도 최근 한국의 지원을 받아 벼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파라과이는 쌀농사가 농가의 주요 소득원인 나라다. 자체 육성 품종이 없어 주로 이웃 나라인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종자를 받아 재배하고 있다. 하지만 재배 환경이 달라 생산성과 상품성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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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청은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이하 코피아)을 통해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코피아는 세계 각국의 현지 풍토에 맞게 농업기술을 개발·보급하는 지원 사업 프로그램이다. 현재 22개국(2021년 기준)에서 운영 중인 코피아센터〈그래픽 참조〉는 K-농업 기술을 전파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코피아 파라과이센터는 10여년 전부터 현지 농업연구청과 함께 파라과이 풍토에 맞는 신품종 벼 육성 사업을 추진해 왔다. 2018년 11월 파라과이 최초의 새로운 품종(CEA-5KPUNTA)을 개발해 정식 품종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신품종을 현지 농가에서 재배한 결과 단위면적(㏊)당 생산량과 소득이 기존 외래 품종보다 2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파라과이에서는 4개 주 5곳에서 신품종 재배 시범사업에 들어간 상태다. 한국인 코피아센터 관계자가 현지에 상주해 시범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박홍재 코피아 파라과이센터 소장은 “한국의 기술로 현지 식량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라고 했다.

[에콰도르·2020·감자] 성과 : 감자 생산성 증대 기술 보급, 생산량 27.1%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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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드라마와 영화처럼 이제는 K-농업기술이 또 다른 한류로 퍼지고 있다. BTS가 K-pop 분야에서 세계 음악차트를 휩쓸고 각종 음반 관련 수상을 하고 있듯이 K-농업기술도 세계 각국에서 그 가치와 성과를 서서히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옥수수(캄보디아와 에콰도르)·감자(케냐)·양파(스리랑카)·참깨(파라과이)·땅콩(베트남) 등 다양한 작물에서부터 육계와 축산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각 대륙에 퍼져있는 코피아센터를 통해 한국의 우수한 농업기술이 현지인들의 삶을 바꿔 나가고 있다.〈그래픽 참조〉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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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아 센터, 캄보디아 총리 훈장 받아

장안철 농진청 국외농업기술과장은 “한국 농업기술의 강점은 ‘적정기술’이다”라며 “현지의 여건과 환경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부족한 인프라와 현지 농민들의 수용태세까지 고려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이 코피아센터의 핵심적 역할”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2017·육계] 성과 : 사료용 옥수수 연계 육계 생산, 육계 생존율 11.6%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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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잡종 신품종 옥수수 ‘CHM01’도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캄보디아에서는 소·닭 등 가축 집단 사육면적이 매년 높은 속도로 늘고 있다. 2017년 11만여 ㏊던 것이 2년 후 2배가량 증가할 정도다. 가축에게 먹이는 사료용 옥수수를 충분히 공급하는 데 한계에 직면했다. 미국, 태국 등으로부터 사료용 옥수수 종자를 수입하는 캄보디아는 연간 3200만 달러의 외화를 지출하고 있었다. 이에 코피아 캄보디아센터와 현지 농업연구개발원 등은 지난 10년 동안 신품종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캄보디아 역사상 최초로 신품종을 개발해 정식 등록에 성공했다.  ‘CHM 01’은  성숙기가 수입 품종보다 10∼15일 빨라 옥수수 재배 시 노동력 분산 효과가 크고, 메콩강 지역의 우기 침수피해를 피할 수 있는 품종이다. 또 수입 품종보다 약 50㎝ 정도 짧고 줄기가 강해, 돌풍에 의한 피해가 없다는 장점도 있다. 생산량도 외래 품종을 뛰어넘었다. 현지 시험 생산 결과 ㏊당 평균 8.7t을 수확해 수입 품종(7.5t)보다 많았다.

큰 성과로 이어지자 지난 10월, 김용환 코피아 캄보디아센터 소장은 ‘2021 세계 식량의 날’ 행사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 훈장도 받았다. 전량 외국산 종자에 의존하던 현지에서는 이번 성과를 ‘옥수수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다. 수상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한 포털사이트 관련 기사 댓글에는 “BTS만 해외에서 한국을 빛내는 것이 아니었다”며 “한국의 농업기술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줄 몰랐다”는 소감이 달리기도 했다. 현재 아프리카 기술협력 협의체인 ‘카파치’ 외에도 아시아 농식품 기술협력 협의체(AFACI·아파치), 한·라틴아메리카 농식품 기술협력협의체(KoLFACI·콜파치)가 삼두마차처럼 농업 한류를 전파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세 협의체를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현지에서 농작물뿐만 아니라 토양과 병해충정보시스템 등을 구축하는데 K-농업기술이 적극 활용되고 있다. 최선태 농진청 국제기술협력과장은 “코피아센터를 전초기지로 해 대륙별 다자간 기술협력 협의체가 농업 한류의 전파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형 농업기술을 기반으로 현지 맞춤형 기술 제공, 공동개발, 농업전문가 육성을 통해 단순한 원조 방식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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