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씨감자, 안데스 고원에 안착…수확량 50% 늘어나 소득 20% 증대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27 00:20

업데이트 2021.11.2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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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09면

[SPECIAL REPORT]
K-농업, 식량 위기 해결 씨앗 뿌리다

조강진 코피아 에콰도르센터 전 소장

조강진 코피아 에콰도르센터 전 소장

“처음 에콰도르의 농촌 마을에 도착했을 때 꼭 30여 년 전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았어요. 이제 막 소형 농기계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소나 당나귀에 의존해 밭을 갈고 있었죠. 아주 열악했습니다.”

조강진(67·사진)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이하 코피아) 에콰도르센터 전 소장은 5년 전인 2016년 11월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가 부임한 에콰도르센터는 수도에서 남쪽으로 약 30㎞ 떨어진 마챠지주에 자리잡았다. 조 소장은 그곳을 거점으로 4년 간 에콰도르에 K-농업을 전파했다.  현역 시절 농업진흥청에서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관리, 조정하는 업무를 맡았던 그는 퇴임을 앞두고 에콰도르센터 파견을 자처했다. 앞서 아프리카 케냐 코피아센터 소장으로 현지에 맞는 농업기술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조 소장은 코피아센터의 역할이 개발도상국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후와 토양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우수한 종자를 보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에 맞지 않으면 잘 자랄 수가 없습니다. 기후환경에 맞는 농작물을 연구해 보급하는 게 국가의 역할인데, 개발도상국은 여러가지 시스템이 아직 부족한 상황이에요.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생산량이 늘어나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데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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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국가인 에콰도르는 나라 이름부터 ‘적도’라는 뜻을 지녔다. 지구 북반구와 남반구를 나누는 기준인 적도(위도 0도)에 자리한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가장 다양한 기후와 지형을 보인다. 특히 ‘남미 대륙의 척추’로 불리는 안데스 산맥을 품고 있어 해발 2700~3400m에서 농사를 짓는 게 일상이다. 에콰도르 인구의 30%가 농촌에 살며 농업에 종사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감자·옥수수 등이 주식이다.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인 감자는 농가 소득의 10%를 책임지는 중요한 작물이다. 그럼에도 생산량이 1㏊당 평균 12t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평균 생산량(27t)은 물론 전 세계 평균(15t)과 비교해도 생산성이 확연히 떨어진다.

원인은 감자 종자인 씨감자다. 안데스 고원지대 원주민들은 우수한 종자를 따로 개발하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오는 씨감자를 재사용하는 방식으로 재배한다. 조 소장은 “에콰도르에선 종자를 땅 속에서 키우다 보니 씨감자 안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재배하더라도 병충해에 약하다”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농업 선진국이 무균 상태의 실험실에서 배양해 키운 씨감자를 만들어 바이러스나 병원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한 것과는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에콰도르센터는 낮은 씨감자 보급률을 현지 농사의 문제점으로 보고, 에콰도르 농업연구청(INIAF)과 협력해 무병씨감자 개발·보급에 나섰다. 3년에 걸쳐 자동화 온실을 이용한 원종 씨감자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이 높은 우량 씨감자를 현지 농가에 보급했다.

그 결과 3% 수준이던 씨감자 보급률이 15%까지 늘었다. 82개 농가가 실증을 거쳐 무병씨감자를 보급, 파종부터 수확까지 재배 기술 교육까지 돕자 감자 수확량이 50% 가량 증대됐다. 코피아센터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276개 농가를 대상으로 무병씨감자 보급 시범 마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주(州)도 2019년 5개에서 2020년 16개로 크게 늘었다. 에콰도르 씨감자 보급의 씨드뱅크 격인 쌍꼴끼 지역 씨감자 생산온실은 중남미에서도 손꼽히는 시설규모를 자랑한다. 2013년 세워져 한 해 약 26t의 씨감자를 생산하는 이 온실은 모든 과정이 자동제어시스템으로 관리된다. 에콰도르센터는 이곳에 조직배양시설의 기술적인 자문은 물론 상토살균기, 감자크기분류기 등 각종 실험기기를 제공했다.

조 소장은 “생산량이 50% 늘어나자 농가 소득도 20% 가량 증대됐다”며 “종자를 보급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마다 한국에서 우리 농업 기술을 전수할 수 있는 지도자를 초청해 교육하는 등 농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코피아센터의 궁극적인 역할”이라고 말했다.

에콰도르센터의 활동은 국제사회에서도 모범 사례로 인정 받았다. 지난해 10월 국제연합(UN) 산하 ‘팩토 글로벌 레드 에콰도르(PGRE) 네트워크’로부터 빈곤퇴치 분야 공로상을 수상한 것. 에콰도르센터는 산간지의 감자 생산성 향상을 위한 농업기술 보급과 농가소득 증진을 위한 농민조합 결성 등 에콰도르 농업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4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조 소장은 현지 농민의 소박한 정을 잊지 못한다. 그의 퇴임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온 농민들이 직접 키운 작물과 고기를 들고 찾아와 작별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조 소장은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농사는 결국 그 나라 환경에 맞게 기술을 개발, 개선해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코피아센터가 단편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현지 실정을 고려한 협력사업을 전개하는 점에 있어서 개발도상국의 농업발전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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