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병상의 코멘터리

전두환이 끝내 사과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1.11.23 21:57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두환 장군 퇴역식. (1980년)

전두환 장군 퇴역식. (1980년)

1. 전두환 전대통령이 23일 숨졌습니다.
그의 죽음을 보는 시선조차 민감합니다. 전두환을 향한 마지막 비판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입니다. 지난달 26일 숨진 노태우 전대통령은 사과했는데..

2. 전두환이 사과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유언에서 드러납니다.
‘북녘 땅이 바라다 보이는 전방의 어느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기어이 통일의 그날을 맞고싶다.’
회고록에 따르면 전두환은..‘김일성 왕조가 무너지고 조국이 통일되는 감격을 맞이하는 일’이 ‘평생 지녀온 염원과 소망’이랍니다. 그래서 ‘전방 고지’에 묻히려는 겁니다.

3. 전두환은 평생 북진통일, 혹은 흡수통일을 꿈꿔온 군인입니다.
그 맥락에서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혼란스러운 조국을 지키기위해 헌신’한 것이 자신의 삶이라 자부합니다. 12ㆍ12 쿠데타와 5ㆍ18 유혈진압이 모두 이런 ‘조국수호 초심’에서 비롯된 것이며..‘주저없는 선택이었고, 목숨을 건 결단’이었다고 주장합니다.

4. 전두환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반란죄(12ㆍ12)와 내란죄(5ㆍ18)도 같은 맥락에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첫째 12ㆍ12 관련..전두환은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쿠데타를 ‘박정희 시해사건 수사를 위한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승화 총장이 시해범 김재규에 동조하는듯한 의혹을 수사해야 했다는 겁니다.

5. 둘째 5ㆍ18 유혈진압 관련..전두환은..‘북한의 도발 등 국가적 위기가..나라 안팎에서 밀려오는 격랑을 가라앉혀야하는 책무가 오롯이 나의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 5ㆍ17 시국수습방안(계엄확대)입니다. 그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이 폭동을 일으켰기에 ‘시국을 수습’했다는 얘기입니다.

6. 그런데 12ㆍ12와 5ㆍ18은 법원에서 반란죄와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폭력에 의해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헌법재판소가 1995년‘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림에 따라 국회에서 5ㆍ18특별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시효가 만료되어도 처벌이 가능해졌습니다.

7. 법원판결에 따르면..12ㆍ12는 반란죄에 해당됩니다.
결정적으로..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체포했기에 국헌문란에 해당됩니다. 전두환이..헌법에 정한 대통령의 군통수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8. 계엄확대(5ㆍ17)와 유혈진압(5ㆍ18)은 내란죄에 해당됩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에게 5ㆍ17 계엄확대를 강요했다는 겁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의 국정운영권한을 군인들이 뺏어간 셈입니다.
전두환의 이런 국헌문란에 저항해 일어난 것이 5ㆍ18 광주입니다. 이를 유혈진압한 행위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내란죄에 해당됩니다.

9. 전두환은 이런 법원판결을 ‘정치적 탄압’이라고 확신합니다.
5ㆍ18 특별법을 제정한 정치적 배경이 된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는 자신에 대한 정치보복이란 겁니다.

10. 전두환은 반역과 내란을 인정할 경우..관련된 모든 군인, 나아가 우리 군의 ‘불명예’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군인이었던가 봅니다. 노태우는 정치인이었습니다만..
〈칼럼니스트〉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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