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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응원 핑계로 정치인 꼼수…'불법 현수막' 골머리 썩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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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대구 수성구 욱수동 덕원고등학교 앞에 걸린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수능 응원 현수막. 김정석 기자

18일 오전 대구 수성구 욱수동 덕원고등학교 앞에 걸린 주호영 국민의힘 국회의원의 수능 응원 현수막. 김정석 기자

지난 18일 오전 대구 수성구 욱수동 덕원고등학교 앞.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이 마련된 덕원고에 수험생이 속속 들어섰다.

수험생들이 바삐 발길을 옮기는 와중에 가로등과 가로수 사이에 걸어둔 한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수능 터널을 지나는 모두에게, 힘내!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수험생들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는 응원 현수막인데, 글귀 바로 옆에는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대구 수성갑) 얼굴이 붉은색 배경에 새겨져 있었다.

이날 대구 지역 곳곳에서는 수능 응원 현수막이 난립했다. 주요 교차로에는 신호등과 가로수 사이사이마다 지자체장과 기초의원, 출마 예정자들이 걸어둔 현수막들이 빼곡했다. 응원 내용은 제각각이었지만 그 옆에 사진과 정당을 적어놓은 건 매한가지였다.

이들 현수막은 대부분이 지자체 신고를 거치지 않고 게시된 불법 현수막이었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수능 응원뿐 아니라 명절 인사, 정책 홍보 등 다양한 이유로 불법 현수막을 내거는 정치인들이 많아지면서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행사 또는 집회 없이 정당의 정책 현수막을 표시·설치하는 것은 광고물 표시 방법에 부합하지 않는 불법 행위다.

18일 대구 달서구 한 교차로에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18일 대구 달서구 한 교차로에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정석 기자

직장인 김부현(34)씨는 “거리 곳곳에 정치인들 얼굴이 나온 현수막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선거철이 오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도 “정치인들이 수능 응원이나 명절 인사 등을 핑계로 교묘히 선거운동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후죽순 들어선 불법 현수막 피해는 보행에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지자체 행정에도 해를 끼친다. 대구 지역 지자체들은 수능 다음주인 22일부터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을 철거할 방침이다. 대구 달서구는 지난 추석 회수한 현수막이 250여 장에 달할 정도로 불법 현수막 난립이 행정력 낭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구 한 구청 관계자는 “정치인이 앞다퉈 현수막을 걸지만 정작 스스로 현수막을 철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지역 시민단체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구미경실련은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시민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이름 알리기 불법 선거 현수막’은 그동안 도시미관 훼손 차원의 지적이 많았다”며 “‘음료수 플라스틱 빨대 하나라도 줄이자’는 지구 생존 차원의 탄소중립 시대에 처한 지금 현수막을 소각할 때 이산화탄소와 발암물질 발생 등 탄소중립과 환경보호 차원의 문제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북 구미 지역 일대에 게시된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현수막. 사진 구미경실련

경북 구미 지역 일대에 게시된 정치인들의 수능 응원 현수막. 사진 구미경실련

그러면서 “시민들 눈높이를 존중하고 탄소중립 시대를 선도하는 차원에서 대구·경북 출마 예정자들이 ‘불법 선거 현수막 안 걸기 캠페인’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전북 지역 출마 예정자들을 중심으로 불법 현수막을 걸지 않겠다는 내용의 캠페인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전북 전주시장 출마 예정자들의 협약을 계기로 시작된 이 캠페인에 전북 지역 14개 기초단체와 시장·군수 출마 예정자, 전북도교육감 출마 예정자 등 80여 명 전원이 동참했다. 도지사 출마 예정자들도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구미경실련 관계자는 “이번 수능에 불법 현수막 게시를 하지 않은 출마 예정자들이 먼저 ‘불법 선거 현수막 안 걸기 협약’ 체결을 다른 출마 예정자들에게 제안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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