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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아닌 면으로 친다, 페르난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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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페르난데스 타격 분석

페르난데스 타격 분석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3·사진)는 독특하다.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비율이 높지만, 홈런 타자가 아니다. 2019년 KBO리그 데뷔 후 연평균 홈런이 17개. 키 1m78㎝로 올 시즌 외국인 타자 중 최단신이다. 발이 느려서 병살타도 많다. 타석에서 위압감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그는 단점을 상쇄하고 남을 타격 능력을 갖췄다. 세 시즌 동안 안타가 566개로 리그 전체 1위. 연평균 안타가 무려 188.7개(타율 0.333)에 이른다.

페르난데스의 타격 능력은 가을에도 유효하다.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타율 4할(10타수 4안타)로 예열하더니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도 타율 0.462(13타수 6안타)로 맹타를 휘둘렀다. 플레이오프(PO)에선 타율 0.556(9타수 5안타)로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두산의 사상 첫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이끈 주역이다. 두산이 KT 위즈와 KS 1, 2차전을 모두 패했지만, 페르난데스는 타율 0.625(8타수 5안타)를 올리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올해 포스트시즌 타율이 5할(40타수 20안타)에 이른다.

‘타격 기계’를 연상시키는 콘택트 비결은 그의 타격 폼에서 찾을 수 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페르난데스에 대해 “폼이 독특하다. 타격할 때 미리 (배트가) 돌지 않고 뒤에 남아 있다. 그러면 (공이 배트에 맞는) 면적이 좋다(넓다)”고 평가했다.

공이 맞는 배트 면적이 넓어지면 정타(正打)가 많아진다. 그만큼 좋은 타구가 될 확률도 높다. 박용택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은 “키네마틱 시퀀스(kinematic sequence)라는 게 있다. 운동 능력을 발휘하는 순서라고 할 수 있는데 하체부터 시작해 골반이 열린 뒤 턴으로 틀어지고 몸통이 열린 다음 움직이는 과정이다. 이후 어깨가 회전하면서 팔과 손이 움직인다. 페르난데스는 이 동작이 가장 잘 된다. 그래서 배트 헤드가 늦게까지 (뒤에)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늦게까지 남긴 배트 헤드 덕에 정타가 많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타격할 때 손을 빨리 쓰면 배트 헤드가 빨리 나온다. 예를 들어 오른손 타자는 손을 빨리 내밀면 왼 어깨가 빨리 벌어진다. 골프에서 손으로만 치면 공이 똑바로 날아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며 “페르난데스는 (배트에 공이 맞는) 면이 굉장히 넓다. 정말 좋은 타자”라고 했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투수가 던진 공은 일자가 아닌 포물선을 그리면서 타자로 향한다. 타자 입장에서 타격하는 순간이 (공과 배트가 만나는) 하나의 점이라면 페르난데스는 이 점을 5개 정도 가지고 있다. 타이밍이 조금 늦거나 빨라도 타구를 페어 지역으로 보내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페르난데스의 타격은 웨이트 시프트 시스템(weight shift system·중심 이동)이 아닌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rotational hitting system·허리 회전)에 가깝다. 로테이셔널 히팅 시스템은 미국 메이저리그(MLB)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내세운 타격 이론이다. 몸 중심을 뒤에 남겨 놓고 골반을 강하게 회전해 강한 타구를 날린다. 움직임이 적어 정확한 타격이 가능하다. 완벽하게 이 자세를 소화하려면 강한 허릿심과 탄탄한 하체가 뒷받침돼야 한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페르난데스의 스탠스를 보면 오른발의 끝이 안쪽으로 들어가고 왼쪽 발도 조금 더 안쪽으로 모여있다. 이렇게 하면 허벅지 근육을 딱 모을 수 있다. 이 스탠스를 사용했던 타자가 과거 MLB 뉴욕 메츠에서 뛰었던 대럴 스트로베리(MLB 통산 홈런 335개)”라며 “페르난데스는 스트라이드도, 발을 내딛는 폭도 크지 않다. 시야가 흔들리지 않으니 타격 정확성이 높다”고 했다.

A 구단 타격 코치는 “하체는 물론 페르난데스의 코어 근육 활용도가 좋다. 타격 후 홈플레이트 쪽으로 몸이 쏠린다. 하체가 버텨주지 않으면 바깥쪽으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허구연 위원은 “몸쪽에 바짝 붙이는 공이나 하이 패스트볼에는 약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페르난데스를 공략하려면 커맨드가 좋아야 하고 구속이 시속 150㎞ 이상 나와야 한다. KBO리그에는 그럴 만한 투수가 많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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