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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폐업안내문 나부끼고 관광객 발길 뚝…명동, 아 옛날이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28)

명동은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한때는 문화·금융의 중심지였으며, 오늘날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쇼핑의 거리다. 직장이 가까이 있어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외국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한산하다 못해 한기를 느낄 정도로 썰렁하다. 주인을 애타게 찾는 ‘임대’라고 붙어진 문구를 볼 때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영화로웠던 옛 시절이 언제나 다시 올까.

점포 정리를 위해 싸게 판매한다는 문구를 게시한 가게 모습. [사진 조남대]

점포 정리를 위해 싸게 판매한다는 문구를 게시한 가게 모습. [사진 조남대]

조선 시대에는 평범한 선비가 모여 살던 주택가로 명례방이라 불려오다 광복 후 지금의 명동으로 바뀌었다.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에는 한국 가톨릭의 본산인 명동성당이 들어섰다. 명동 입구에서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1970년대까지 유행과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예술인과 직장인에게 뒷골목의 가락국수 한 그릇과 막걸리 한잔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80년대 초반 직장이 부근에 있어 점심 먹으러 맛집을 찾아 골목을 순례하기도 했다. 퇴근 후에는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동료들과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사였다. 서울의 중심지인 데다 먹거리와 구경할 곳이 많은 명동에서 만나자고 하면 싫다고 하는 친구가 없었다. 젊은 아가씨들이 한껏 멋을 내고 구두 소리 경쾌하게 울리며 거니는 꿈과 낭만의 거리였다. 무수한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사무실 이전으로 한동안 명동으로의 발길은 뜸했다. 사람이 비켜 가기도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서서 먹었던 소주 한잔이 왜 그리도 달콤했던지….

가림막으로 내부를 가려 둔 채 ‘임대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 조남대]

가림막으로 내부를 가려 둔 채 ‘임대문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사진 조남대]

행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쓸쓸함이 느껴지는 명동 중심거리. [사진 조남대]

행인들의 발길이 뜸하여 쓸쓸함이 느껴지는 명동 중심거리. [사진 조남대]

퇴직 후 2017년 명동성당에서 2년 동안 사진과 수필을 배우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명동 거리를 오갔다. 좋아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다니는 발걸음이라 마음은 가벼웠으며, 거리도 활력이 넘쳤다. 내국인만으로 북적이던 곳이 어느새 국제도시가 되어 외국인이 판을 쳤다. 세계 각국의 여행객으로 붐벼 몸을 부딪치지 않고는 다니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외국어로 관광 안내하는 직원들이 곳곳에서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설렁탕집 앞에는 아침 시간인 데도 관광객이 꼬불꼬불 줄을 길게 서서 입맛을 다시며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의아해하기도 했다. 한 집 건너 있는 화장품 가게 직원들이 샘플을 들고 그냥 줄 것 같은 시늉을 하며 호객행위 하는 소리로 거리가 왁자지껄했다. 옷과 액세서리, 잡화뿐 아니라, 우리 고유의 음식점도 손님들로 북적였다. 모든 가게가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안에서 내뿜는 냉기로 여름에는 길거리를 걸어가는데도 땀 흘리지 않았고, 추운 겨울에도 훈훈한 온기가 마음까지도 녹여 주었다.

장사가 잘되자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뉴스가 들리기도 했다. 명동 중심거리를 비롯하며 골목에는 해거름할 때쯤이면 주변에 숨어있던 포장마차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길 양쪽으로 순식간에 빼곡히 자리를 잡는 모습은 군대에서 선착순 달리기 기합받는 것처럼 빨랐다. 외국 여행 갔을 때 일부러 골목의 먹거리 장터를 찾아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듯이 외국 관광객도 지금쯤 명동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일주스나 해물 요리, 군고구마, 아이스크림 같은 각종 간식거리를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기도 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젊은 여행객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는 명동 밤거리의 포장마차였다. 요즈음 K-푸드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 중에 ‘명동의 포장마차도 일조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코로나 사태 이전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사태 이전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올가을 명동성당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회를 하기 위해 오랜만에 명동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사람의 발길이 뜸할 뿐 아니라 명동 전철역에서 성당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의 많은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강남의 아성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던 명동의 가게 창문에 ‘임대’라는 글씨와 함께 부동산 전화번호가 붙어 있다. 큰 천으로 가게를 가려 놓거나, 그렇지 않은 가게 바닥에는 각종 유인물과 납세고지서들이 무질서하게 나뒹굴고 있어 마음이 쓰라렸다. 영업 중인 가게의 70∼80%에 할인한다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외국 관광객들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매출이 급락한 데다 임대료가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원체 비쌌기 때문에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폐업하는 점포가 속출해 2021년 2분기 기준 소규모 매장 공실률은 40%를 넘었다고 하는 통계도 있다. 장사가 안되고 임대도 어려워서 그런지 곳곳에서 재건축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기회에 낡은 건물을 다시 지어 경기가 회복됐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때문인가? 아침부터 길게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었던 설렁탕집도 코로나 여파인지 가림막을 쳐 놓은 채 공사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성을 쏟아 영업해오던 가게를 폐업한 소상공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언제까지 더 기다려야 지난날처럼 손님들로 붐비고 웃으며 이들을 맞이하는 날이 올 것인가?

40여 년을 지켜봐 온 명동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곳이지만, 요즈음의 명동 거리를 오가다 보면 안타깝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명동의 옛 명성을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외국 관광객이 올 때를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과거의 찬란했던 유행과 문화·예술을 부흥시켜 시민의 발길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거리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만간 이들의 열기로 북적이는 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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