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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쏴 극단선택 올해 2번째…"찍힐까봐 경찰은 정신과 못간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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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일 경찰관이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종로경찰서 신문로파출소 모습. 연합뉴스

7일 경찰관이 총기를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종로경찰서 신문로파출소 모습.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의 한 파출소에서 현직 경찰관이 총기를 이용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경찰관의 정신 건강 관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불행한 유사 사고가 증가세이기 때문이다.

[이슈추적]

경찰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찰관은 2019년 20명, 2020년 24명, 2021년 11월 현재까지 21명이다. 총기를 이용한 극단 선택은 올해 두번째다. 지난 2월 충북 진천군 파출소 창고에서 50대 경찰관이 안타깝게 숨졌다. 지난해 4월에도 충북 영동군에서 40대 경찰관이 총기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보다 열악한 경찰관들의 정신 건강 환경, 여기에서 파생되는 위험성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등을 지적하고 있다. 총기를 다루는 공적 업무라는 점에서 더욱 신경 써야 하는데도 오히려 더 소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정신 상담받았다가 소외될까 두렵다”

경찰관들은 외상성 사건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 또는 정신적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서울의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자살이나 살인 사건 같은 현장을 지속해서 다루는 데다, 부상에 대한 두려움도 항상 있다. 파출소의 경우 밤샘 교대근무, 주취자 처리도 스트레스를 높이는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청은 경찰관의 트라우마 등 직무 스트레스 전문 치유를 위해 ‘마음동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 조직문화상 인식이 좋지 않아 이용을 꺼린다는 게 실무자들의 전언이다. 경찰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당연히 감수해야 할 직업 특성이라고 여기는 분위기, 인사상 불이익 등의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경찰서에 근무 중인 한 경찰관은 “개인적으로든 업무적으로든 상담 센터를 찾기는 힘들다. 센터에 갔다가 괜히 ‘문제 있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면 동료와의 관계, 승진 등에서 소외될까 봐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총기 다루는 개인의 심리와 행동 관찰 프로그램 필요”

전문가들은 업무 중 위험에 노출되고 총기를 다루는 직업 특성상 더욱 면밀한 심리 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효민 영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관은 총기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리 상태를 항상 살펴야 하는데, 국내에선 그런 지침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며 “미국은 과도한 부채나 범죄 연루 소지 등 개개인의 심리상태와 행동을 정례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살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부 당사자만을 위한 사후약방문 방식이 아닌,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심리검사가 필수로 시행돼야 한다”며 “사전 심리검사를 정례화해 평소 애로사항이 있는지 살피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총기와 관련한 규칙이 있긴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있다. 경찰장비관리규칙(제120조)은 경찰기관의 장은 ▶평소에 불평이 심하고 염세비관하는 자 ▶주벽이 심한 자 ▶변태성벽이 있는 자 ▶가정환경이 불화한 자 ▶기타 경찰기관의 장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자에 대해 무기를 회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정신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경찰관에겐 가스총이나 테이저건 등을 지급한다. 김도우 경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총기 지급ㆍ관리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관리는 허술한 편이다. 무기고 열쇠를 직원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장소에 두기도 한다. 팀장급이 직접 지급을 하더라도 그때마다 부하 경찰관의 정신이나 심리 상태를 살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신 건강 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게 경찰 안팎의 진단이다. 김도우 교수는 “정신 상담 비밀 보장이 된다고 하더라도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가기 힘들다. 근무에서 배제될까 두려운 마음이 가장 클 것”이라며 “정신 상담과 관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의 전환이 우선돼야 하며, 큰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한 경찰관들은 의무적으로 상담을 받게 하는 등 일종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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