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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개 양조장서 각양각색 술맛…20대 52% 수제 맥주 즐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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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15면

[SPECIAL REPORT]
국산 수제 맥주 열풍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이다. 보리 맥아로 만들어진 맥주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노동자들과 군인들에게는 급여의 일부로 맥주가 제공되기도 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맥주를 양조하게 됐다. 수도사들의 금식 기간 동안 맥주는 중요한 에너지원이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맥주의 대량생산과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져 맥주 산업은 급속히 성장했다.

맥주는 발효 방식에 따라 크게 에일과 라거로 분류한다. 냉장설비가 발명된 19세기 이전의 맥주는 대부분 에일 맥주였다. 겨울철을 제외하고는 맥즙의 온도를 낮추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33년 처음 맥주가 생산된 이후 수십 년 동안 라거 맥주 일변도였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가 도입되며 에일 맥주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 후 주세법 개정으로 맥주 출고가의 72% 주세를 부과하던 종가세 방식에서 2020년에 리터당 834.4원(병·캔 맥주) 종량제로 전환됐다. 2021년에는 소규모 양조장이 대형 공장에 OEM 위탁 생산하는 것이 허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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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우리나라 맥주 시장을 이야기할 때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수제 맥주’라는 용어다. 수제 맥주라고 하면 맥주 양조자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만드는 뭔가 정교하고 섬세한 맥주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일반 대기업의 큰 맥주 공장에서 만드는 것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단지 양조 설비 규모의 차이가 날 뿐이다. 수제 맥주는 미국의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 문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영어를 번역하는 과정에 나온 용어다.

우리나라 주세법에는 ‘수제 맥주’라는 용어의 정의가 없다. 소규모 주류제조면허를 가진 양조장에서 생산된 소규모 제조 맥주가 수제 맥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수제 맥주’는 ‘소규모 제조 맥주’가 정확한 표현이다.

국산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2015년 200억원을 조금 넘던 것이 지난해 1000억원을 돌파했다. 업계에서는 2023년에 37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편의점 CU의 국산 맥주 소비에서 수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20대는 52.4%, 30대는 37.5%를 차지하고 있다. 가히 수제 맥주 열풍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편의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인기 있는 국산 수제 맥주 중 상당수는 일반 주류제조면허를 가진 대형 공장에서 만든 맥주다. 그럼 왜 이런 맥주들까지 수제 맥주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기존에 대기업 대형 양조장에서 양산되던 라거 일변도의 맥주에서 소규모 양조장들이 에일 위주의 맥주를 생산하면서 ‘에일 맥주=수제 맥주’라는 이상한 공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반 주류제조면허를 가진 대형 공장에서 만든 소위 ‘이름만 수제 맥주’도 국내 맥주 산업 발전을 위해 긍정적이라 본다. 수제 맥주 시장 규모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편의성을 제공하며 수제 맥주 소비문화를 증진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150개가 넘는 맥주 양조장이 있다. 지역의 특색을 살려 독특한 양질의 수제 맥주를 만들어내는 양조장들도 많다. 소규모 양조장이 공생할 수 있는 길이 모색되어야 더욱 다양한 맥주 시장이 발전할 수 있다. 대형 양조장과 협업으로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소규모 양조장은 오늘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여행객이 줄면서 지방의 특색 있는 양조장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경제도 활성화하고 맥주 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진짜 소규모 제조 맥주에 한해서라도 온라인 유통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전통주는 2017년부터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해 온라인 유통이 허용됐다. 많은 선진국에서도 맥주 온라인 유통이 허용되고 있으며, 코로나로 인한 경기 침체로 위기에 몰린 소규모 양조장을 돕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 허용이 소규모 맥주 양조장과 상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길을 열어 주면 성숙해지고 있는 국내 수제 맥주 시장에 한층 더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면 지역 기반의 다양한 맥주 축제를 활성화하는 것도 우리나라 맥주 시장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지자체의 도움을 받아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맥주를 만들고 지역 맛집, 관광지와 연계하는 체험형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지역의 농업, 제조업, 관광업을 활성화하여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우리가 수제 맥주라고 알고 마시던 맥주가 수제 맥주건 아니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양하고 성숙한 맥주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들이 해외 맥주 대회에서 많은 쾌거를 거두고 있다. 짧은 맥주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양조자들의 기술이 맥주 강대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일본 맥주가 해외에서 프리미엄 맥주로 인정받고, 중국의 칭다오 맥주 축제가 세계적인 맥주 축제로 자리 잡아 가는 것처럼 우리의 맥주 문화와 상품도 세계로 뻗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K-비어’가 세계 속의 새로운 한류 문화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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