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구두약·속옷 맥주? 기묘한 콜라보 MZ세대 홀렸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1.06 00:20

업데이트 2021.11.06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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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14면

[SPECIAL REPORT]
국산 수제 맥주 열풍

지난달 28일 출시된 푸드 페어링 맥주 불닭망고에일. [사진 CU]

지난달 28일 출시된 푸드 페어링 맥주 불닭망고에일. [사진 CU]

마니아들의 영역이었던 수제 맥주는 ‘편의점’, ‘콜라보레이션’ 두 가지 키워드로 대중과 한층 더 가까워졌다. ‘4캔 만원’으로 저렴한 판매가격에 집중되어 있던 편의점 맥주 시장은 이색 콜라보레이션을 내세운 수제 맥주의 활약으로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진라거 초도물량 2초에 한 캔꼴 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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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수제 맥주의 급성장은 지난해 5월 CU가 대한제분, 수제 맥주 브랜드 세븐브로이와 함께 출시한 ‘곰표 밀맥주(사진2)’에서 시작됐다. 추억의 밀가루 브랜드인 곰표와 수제 맥주라는 이색 조합이 뉴트로 열풍을 저격했다는 분석이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다. 편의점 주 고객층인 MZ세대의 눈길을 끈 곰표 밀맥주는 출시 당시 3일 만에 초도 생산물량 10만 개가 완판됐고, 지난달까지 2500만 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곰표 맥주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라는 글이 눈에 띄는 등 과거 허니버터칩 품절 대란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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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표 홍보대행사인 플랜힐앤컴퍼니 이혜란 팀장은 “곰표는 오래된 브랜드지만 MZ 세대가 잘 모르는 브랜드였다”며 “곰표 밀가루의 ‘밀’이란 재료를 가장 친숙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제품을 찾다 맥주를 선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MZ 세대에는 레트로, 4050 세대에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해 정체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고자 한 것이다. 곰표가 대히트를 치자 CU는 ‘말표 흑맥주(사진3)’, ‘백양BYC 비엔나라거(사진1)’ 등 레트로 브랜드와의 협업 상품을 연이어 내놓으며 ‘곰·양·말’ 콜라보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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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표’의 인기가 고공 행진하자 편의점업계는 연달아 이색 콜라보 수제 맥주를 내놓았다. 2018년부터 ‘제주백록담’, ‘경복궁’ 등 랜드마크 수제 맥주를 판매한 GS25는 지난해 12월 제주도의 유명 커피점과 콜라보레이션한 ‘비어리카노’를 시작으로 가전 브랜드 및 아웃도어 브랜드와 협업한 ‘금성맥주(사진4)’, ‘노르디스크맥주’를 선보였고, 세븐일레븐은 수제 맥주 스타트업 더쎄를라잇브루잉과 함께 기존 식음료 명을 활용한 ‘유동골뱅이맥주’, ‘쥬시후레쉬맥주’ 등을 출시했다. 콜라보 맥주의 인기는 매출과도 직결돼 지난해 주요 편의점의 수제 맥주 매출은 일제히 세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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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맥주로 성공을 맛본 업계는 최근 라면, 치킨 등 맥주와 곁들일 수 있는 음식에 초점을 맞춘 수제 맥주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 9월 오뚜기와 수제 맥주 업체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출시한 ‘진라거’가 대표적이다. 진라거는 초도물량 70만 캔이 2초당 한 캔꼴로 팔릴 만큼 대성공을 거뒀다.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는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라멘에 맥주를 곁들이는 게 일상이었던 것이 떠올라 ‘치킨엔 맥주’라는 진부한 표현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출시 비화를 전했다.

“대기업, 수제 맥주 본 뜻 헷갈리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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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는 삼양식품, 더쎄를라잇브루잉과 손잡고 불닭볶음면의 매운맛과 잘 어울리는 ‘불닭망고에일’을, 수제 맥주 업체를 인수한 교촌에프엔비는 치맥 하기 좋은 맥주인 ‘교촌치맥’ 등을 최근 출시했다. 불닭망고에일은 불닭볶음면의 글로벌 시장을 활용해 내년 초 수출도 계획 중이다.

기존 맥주 시장을 굳건히 지키던 대기업들은 위탁생산(OEM), 브랜드 개발 전략으로 대응에 나섰다. 수제 맥주 시장이 기존 맥주 시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자 시장 점유율 하락을 막기 위해 대책을 모색한 결과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곰표의 대성공이 대기업들에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라며 “시장의 판도가 바뀌니 수제 맥주 개발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며 상황을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지난 6월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수제 맥주 개발을 위해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 브랜드를 출범했다. 오비맥주의 생산 인프라를 기반으로 수제 맥주 전문가와의 협업을 진행하겠다는 목적에서다. KBC는 GS25의 ‘노르디스크 맥주’, CU의 ‘백양 비엔나라거’, 세븐일레븐의 ‘캬 소리 나는 맥주(사진5)’ 등 4대 편의점 브랜드에서 판매되는 콜라보 수제 맥주를 개발, 생산한다. 오비맥주 KBC 윤정훈 이사는 “앞으로도 다양한 이종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수제 맥주 시장을 선도하고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칠성은 코로나19 장기화로 타격 입은 매출을 수제 맥주 위탁생산으로 메꾸겠다는 계획이다. 롯데는 곰표 밀맥주가 물량 부족에 시달리던 지난 1월 위탁생산을 맡아 매출이 동반 상승하는 시너지 효과를 누렸다. 지난달 수제 맥주 기업오디션 ‘수제 맥주, 캔이 되다’ 프로젝트를 개최한 롯데는 향후 오디션을 거쳐 중소형 수제 맥주 브루어리에 생산, 유통 등을 위탁받아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KB증권 이선화 연구원은 “수제 맥주 OEM 확대로  주류업계의 어려운 업황 속에서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개선됐다”며 “내년 관련 매출액도 단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 특색에 맞는 수제 맥주 특산물 개발에 나섰다. 부산 북구는 지난해 5월 전국 최초로 ‘구포맥주 329’를 출시했다. 구포맥주는 북구 화명생태공원 일대에서 재배된 밀을 활용해 생산하고, 부산의 수제 맥주 브랜드인 갈매기브루잉이 레시피를 담당하는 식의 콜라보로 탄생한 제품이다.

그러나 수제 맥주 업계는 대기업의 수제 맥주 시장 진출이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다. ‘진라거’를 출시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김태경 대표는 “대기업이 수제 맥주 시장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일시적으로 다급하게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며 “차별화된 제품,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하기보다는 수제 맥주의 본래 의미를 헷갈리게 한다”고 쓴소리를 전했다. 속초의 수제 맥주 업체인 몽트비어도 지난 9월 페이스북을 통해 “수제 맥주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어서 어떻게든 시장에 들어와야겠기에 이름만 수제인 맥주라도 만들어야 하는 고충을 모른 척할 수 없다”며 주객 전도된 상황을 풍자하기도 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김진만 과장은 “지금의 열풍은 수제 맥주의 맛이 아닌 디자인, 이름 등 콜라보 자체에만 눈길이 가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의 판매량만 늘어날뿐 수제 맥주 업체들의 인지도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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