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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치장 유리병, 왕관 모양 병뚜껑…가장 비싼 고귀한 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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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호 22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주얼리 워터 ‘필리코’ 

주얼리 워터 ‘필리코’. [사진 윤광준]

주얼리 워터 ‘필리코’. [사진 윤광준]

720㎖ 물 한 병 값이 25만원에서 55만원이나 한다고? 편의점 생수 한 병이 대략 1500원 정도니까 167개에서 367개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도대체 이런 걸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중동의 부호인 만수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아무리 만수르라 해도 매일 수시로 마셔야 하는 물까지 이 정도 무리할 것 같지 않다.

주얼리 워터 필리코(Fillico)를 처음 알게 된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코엑스 지하의 별마당 도서관에서 열렸던 이색 전시장에서다. 주위의 시선과 생활의 중압감으로 한 번도 제 삶을 살아보지 못한 남자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자리였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보통 남자의 일상을 채워준 취향의 물건이 전시물로 나왔다. 자신만의 선택을 소중히 하는 이는 어떻게 사는지, 관심을 구체적으로 펼쳐가는 과정과 방법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보여준 자리였다.

전시장 한 편에 무심히 놓여있는 범상치 않은 흰색의 유리병이 보였다. 장식품인 줄 알았다. 설명문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 Fillico’란 설명이 붙어있었다. 만수르나 쓰는 줄 알았던 값비싼 물을 바로 코앞에서 실물로 보게 될 줄 몰랐다. 필리코에 관심이 생겼다. 소장자에게 필리코의 구입 경위와 이유를 듣게 됐다. 광고의 세계에서 관심 갖지 못할 물건은 없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혹은 비싼 물건은 무엇일까? 라는 호기심으로 찾아낸 것이라 했다. 럭셔리 워터의 세계를 알게 되고, 도쿄에서 실물을 구했단다. 2013년 21만원 정도하던 필리코의 값은 최근 36만원까지 올라갔고 특별 에디션은 55만원을 호가한다.

백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형상화된 높이 360㎜ 지름 95㎜의 안정감 있는 새틴(반광택)유리병. 도금된 왕관 모양의 병뚜껑은 아연 70% 주석 30%의 합금이다. 여기에 스와롭스키가 만든 크리스털과 보석을 장식했다. 부착물로 천사의 날개도 달 수 있게 했다.

필리코는 가장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왕관 장식 마개가 트레이드 마크다. 왕관은 성공과 아름다움, 고귀한 명성을 상징하지 않던가. 천사의 날개는 행복의 성취와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라 할 수 있겠다.

필리코를 들어보면 묵직하다. 물의 용량인 720㎖에 더해진 여러 부속물 때문이다. 두터운 병의 재질과 표면에 붙은 영롱한 크리스털의 갯수, 왕관 장식에 더해진 보석의 숫자와 천사 날개의 무게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환하게 비치는 간유리가 물의 투명함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백색의 유리와 보석의 광채가 어우러진 물병은 세련된 자태로 고고하다.

필리코는 2005년 소중한 자원인 물을 돌아보고 사랑하자는 의도로 고베의 한 사케 회사가 만들었다. 일본의 장인정신으로 만든 병에 고베의 좋은 물을 담아 팔자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실천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고급 미네랄워터(값으로만 치면 필리코보다 비싼 물이 4개 더 있다. 심지어 금을 섞어 6000만원을 매겨놓은 것도 있다)란 이야기와 한정판의 희소성이란 상품가치를 기대했음은 물론이다. 필리코는 실제 수작업으로 인해 월 5000병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물을 사는 이들은 누구일까. 생각보다 수요가 많다고 했다. 특별함을 강조하는 왕실의 리셉션과 기업의 화려한 행사에 쓰인다. 크리스찬 디올은 VIP고객을 위한 선물로 필리코를 선택했다.

인생의 특별한 순간을 위한 축복의 자리에 보석으로 장식한 물의 등장은 신선하다. 게다가 새롭고 흥미진진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물을 우아하게 포장해 파는 필리코의 상술이 거슬리지만은 않는다. 물이라는 자연의 선물이 오염되는 걸 막아야 한다는 무언의 캠페인이기도 해서다. 이유야 어떻든 필리코는 마시자고 만든 물이 아니란 점은 분명하다.

심지어 필리코의 신제품을 보면 물은 아예 먹지 못하게 밀봉해 호화로운 장식물로 한정시켰다.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을 모티프로 삼은 시리즈가 그 예가 된다. 화려한 꽃을 병 속에 담아 펼쳐지게 한 물은 지지체일 뿐이다.

연인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다. 자신의 속마음을 전달하도록 이름은 이런 식으로 붙였다. ‘요정의 화원’ ‘사랑을 이룰 붉은 꽃’ ‘타고난 화가’ ‘까마득한 꼭대기’ ‘반전하는 운명’ ‘불굴의 운명’ 심지어는 ‘돈 비를 내리소서’ ‘먹고 마신다, 우리는 내일 죽을 것이니’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에 병 표면의 크리스털을 받는 이의 탄생석과 같은 색깔로 주문할 수도 있다. 필리코를 통해 생각을 전달하고 축복까지 담게 한 것이다. 장식용 물은 이렇게까지 진화했다.

그럼 물맛은 어떨까. 필리코는 사케의 산지로 유명한 고베 인근 로코산(六甲山)의 물을 쓴다. 로코산은 화강암과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석간수의 맛에 모래로 한 번 더 거른 깨끗한 물이라 생각하면 된다. 주변엔 공장과 건물이 없는 누노바키 샘에서 원수를 채취한다. 미네랄 성분이 의외로 적고 산과 알칼리가 균형을 이룬 물이다.

5년 전 쯤 로코산 인근의 사케 도가를 찾아다녔던 적이 있다. 물 좋기로 유명한 후시미에 몰려있는 오래된 술도가 안마당에 있는 샘물을 마셔봤다. 부드럽고 매끈했다. 경도 높은 강원도의 석회암 지대나 경상남도 퇴적층에서 나는 물과 맛이 다르다. 성분이 달라 생기는 차이다.

하지만 물맛을 누가 알아챌까. 알아도 물맛 때문에 필리코를 사는 이가 있을까. 우리 입맛엔 삼다수나 백산수 물맛이 더 당긴다. 필리코란 장식용 물의 부가가치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부분부터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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