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0% 수제 ‘스카치’…기내서 단무지 곁들이면 최고 술맛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67호 27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프리미엄 싱글몰트 위스키 발베니 

프리미엄급 싱글몰트 위스키인 발베니 25년산. 전 제조 공정이 장인들의 손으로 이뤄지는 100% 수제 위스키다. [사진 윤광준]

프리미엄급 싱글몰트 위스키인 발베니 25년산. 전 제조 공정이 장인들의 손으로 이뤄지는 100% 수제 위스키다. [사진 윤광준]

나다니는 게 신경 쓰이고 만날 사람도 줄어든 요즘 혼술의 횟수가 잦아졌다. 청승맞게 혼자 술을 마시는 건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 했다. 날씨가 싸늘해지니 맥주를 마시는 게 꺼려진다. 코르크를 따면 다 비워야 할 것 같은 와인도 은근한 부담이다. 튤립 글라스가 코에 닿을 듯 향을 느끼며 꺾어 마시는 위스키라면 그럴싸한 그림이 된다. 게다가 잠도 오지 않는 밤 쳇 베이커가 모든 걸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부르는 ‘마이 퍼니 발렌타인’까지 흘러나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불빛의 은은함이 황금빛 색채를 돋보이게 하고 때로 덜그럭거리는 얼음 소리까지 들리니 시각 청각까지 만족시키게 된다. 취기가 오르면 언제든지 뚜껑을 닫고 다음에 마시면 된다. 양의 조절이 무엇보다 쉽다. 게다가 별다른 안주가 없어도 그만이다. 마누라가 특별히 챙겨주지 않아도 물이나 초콜릿만 있으면 된다. 위스키만큼 혼술에 최적화된 주종이 드물다는 걸 요즘에야 알았다.

그동안 짬짬이 마시던 위스키를 공부까지 하며 즐기게 됐다. 영국에서 살다 온 위스키 전문가가 펼치는 강좌에 참석하게 된 것이 계기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위스키의 상식과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깨치게 됐다. 지금까지 술은 마시면 되지 공부까지 하며 달려들어야 할 것은 아니라 여겼던 나다. 강의와 함께 3년 숙성된 위스키에서부터 25년산까지 8종류를 시음해 보았다.

비교로 분명해진 숙성의 정도와 맛은 확연하게 대비를 이룬다. 당연한 것이지만 오래될수록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향도 좋다. 여기에 비례해 가격도 대폭 올라간다. 거꾸로 숙성 정도가 짧은 위스키의 맛은 거친 부분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직접 비교해 마셔보니 부드럽고 매끄러운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거칠고 강렬한 인상의 위스키가 외려 더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세상엔 맛있는 위스키와 더 맛있는 위스키만 있다”는 스코틀랜드인의 자부심을 실감했다. 함께한 일행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8종류의 가운데쯤 12년에서 15년산 위스키가 제일 좋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데 놀랐다. 무조건 오래 숙성된 위스키를 선호하는 세간의 분위기는 고급품의 후광효과란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황실에서 즐겨 마시는 위스키 또한 10~15년 안팎의 것이란 이야기도 여기서 확인했다.

과거 스코틀랜드를 합병한 영국이 위스키에 높은 세금을 매겼고 업자들은 이를 피해 북부의 하이랜드 지역에 숨어 밀주를 만들게 된다. 만든 술은 정부의 감시를 피하려 와인용 오크통에 담아두었다. 몇 년을 묵혀 열어보니 투명한 호박색의 맛과 향이 훌륭한 술로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오크통에 숙성시킨 게 스카치 위스키의 출발이다.

스코틀랜드는 음산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위스키의 원료인 보리가 자라기엔 적합한 기후다. 게다가 스카치 위스키의 제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탄(Peat)층이 펼쳐져 있다. 제조업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이유가 된다. 온도변화가 적은 날씨 탓에 숙성과정에서 손실되는 양도 적다. 대형 증류기가 보급된 19세기 말 하이랜드와 스페이사이드 (Speyside)가 위스키의 주산지로 떠오른 건 필연이다.

하이랜드에 글렌리벳이 있다면 스페이사이드엔 발베니가 있다. 발베니의 이름이 낯설다면 글렌피딕은 아하! 하고 반응할지 모른다. 둘은 모두 한 회사에서 만드는 싱글몰트 위스키다. 싱글몰트는 보리의 싹만을 틔워 이탄의 열과 연기로 말려 술을 빚고 증류시켜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호밀이나 밀, 옥수수로 만들면 그레인(Grain) 위스키가 된다. 몰트 위스키와 이를 섞으면 브랜디드 위스키다. 싱글몰트는 커피로 치면 단일 품종만을 쓰는 싱글 오리진이 되는 셈이다. 맛과 향이 진하며 깊은 느낌을 주는 게 싱글몰트 위스키의 매력이다. 숙성기간이 짧게는 3년 길게는 25년이 걸린다. 싱글몰트 위스키를 처음 만든 곳이 윌리엄그랜트앤선즈사다.

발베니는 윌리엄그랜트앤선즈사의 프리미엄급 싱글몰트 위스키라 할 수 있다. 순혈 싱글몰트 위스키란 이유 때문에 대접을 받는다. 원료인 보리를 직접 재배하고 좋은 물을 끌어오는 일부터 전통 방식의 플로어 몰팅(Floor Malting)까지 모두 사람이 한다. 회사가 세워진 이래 이탄을 태운 연기로 보리 몰트를 말리는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바닥에 널린 몰트를 삽으로 일일이 뒤집는다. 이탄의 향이 몰트에 골고루 배게 하려면 손길보다 더 좋은 건 없다는 고집이기도 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작업하는 사람들의 어깨가 원숭이마냥 구부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몽키 숄더(Monkey Shoulder)란 위스키까지 내놓은 발베니다.

이후 과정은 공정별 장인들의 몫이다. 황동으로 만든 커다란 단식증류기(Pot Sill)가 동원된다. 알코올이 추출되는 주둥이 부분인 린 암(lyne Arm)의 각도도 중요하다. 높이면 알코올 순도가 높아지는 대신 풍미가 떨어지고 낮추면 반대의 일이 벌어지므로 조절은 숙련된 감각을 지닌 사람이 맡게 된다. 추출된 위스키 원액이 담기는 오크통의 재질과 크기를 결정하는 일도 장인의 몫이다. 술과 나무가 닿는 단면적에 따라 배어드는 향과 묵직함을 누가 조절할까. 게다가 최종 병에 담는 일까지 전통방식으로 사람이 한다. 발베니가 100% 수제 싱글몰트 위스키임을 강조하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발베니는 단맛과 과일향이 돋보이는 부드러운 위스키다. 내 입맛에는 두 가지 오크 통에서 숙성시켰다는 12년산 더블우드가 당긴다. 60년 동안 몰트 마스터로 활약했다는 발베니의 장인에게 헌정된 25년산 레어 매리지는 소문으로만 들었다. 하지만 내 입에 넣을 수 없는 술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 동네 대형 마트에 가끔 발베니 12년산이 들어온다. 입고 소식과 함께 하루면 매진된다는 얘길 들었다. 하루 날을 잡아 일찍 가 볼 참이다. 위스키 한 병으로 비롯될 즐거움을 떠올리니 이런 수고도 기꺼이 하겠다. 평생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타고 세계를 누비던 친구가 발베니 12년산 맛있게 마시는 법을 일러줬다. 스튜어디스가 가져다주는 단무지 한 쪽을 곁들이면 최고의 맛이라나. 그런데 언제쯤 비행기를 타게 될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