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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수족관의 ‘흰돌고래’, 망망대해가 꼭 보금자리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신남식의 야생동물 세상보기(40)

고래는 포유동물이지만 수중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여 평생을 물속에서 지낸다. 현존하는 86종의 고래는 대부분 생김새가 유선형이고 행동특성도 비슷하다. 그런데 외형과 행동양식이 조금은 다른 고래가 있다. 몸 전체가 흰색으로 ‘흰돌고래’라 불리는 벨루가고래(beluga whale)다.

벨루가는 러시아와 캐나다 북부주변과 북극해,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인근의 차가운 해역에 주로 분포한다. 체구는 수컷이 암컷보다 25% 정도 커 수컷은 몸길이가 3.5~5.5m, 체중은 1100~1600kg이고 암컷은 길이가 3~4m, 체중은 700~1200kg이다. 등지느러미가 없는 것이 특징으로 얼음 아래에서 쉽게 헤엄치며 이동할 수 있다.

몸 전체가 흰색으로 ‘흰돌고래’라 불리는 벨루가고래(beluga whale)는 다른 고래와 외형과 행동양식이 조금 다르다. [사진 pxhere]

몸 전체가 흰색으로 ‘흰돌고래’라 불리는 벨루가고래(beluga whale)는 다른 고래와 외형과 행동양식이 조금 다르다. [사진 pxhere]

머리의 이마 부분은 둥그렇게 돌출됐는데 멜론(melon)이라 불리는 ‘반향정위(echolocation, 음파나 진동을 발사하여 대상물체로부터 나오는 반사파를 통해 물체의 위치 크기 이동속도 등을 알아내는 탐지기술)’ 기관을 탑재하고 있다. 이마 부분은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 음파의 발사와 수신을 집중하기 위해 공기를 불어 넣어 머리 모양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얼굴 표정이 변하는 것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반적으로 고래는 체중의 30% 정도를 지방으로 채우고 있지만 벨루가는 40~50%가 지방이다.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를 지방으로 감싸는 층의 두께는 15cm에 이른다. 두꺼운 지방층은 차가운 물 속에서 단열재 역할로 체온을 유지해준다. 또한 먹이저장고 역할로 먹이 활동이 부실할 때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청각은 고도로 발달하여 있으며 가청범위는 1.2~120㎑다. 시력은 물 안팎에서 볼 수 있으나 다른 돌고래보다는 떨어진다. 물 밖보다 물속에 최적화되어 있다. 어느 정도 색을 구분할 수 있고 낮은 광도에서도 볼 수 있다. 빛이 없는 깊은 바닷속에서는 음파를 이용해 반향정위 기술로 상황을 읽는다. 휘파람소리, 딸깍딸깍, 짹짹 등 다양한 고음의 소리를 낼 수 있어 ‘바다의 카나리아’라 불리기도 한다.

평상시 수영은 시속 3~9km 정도로 느리게 이동하나 최고시속은 22km로 15분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고래들은 앞으로만 헤엄쳐 나가지만 벨루가는 뒤로 헤엄쳐 이동할 수도 있다. 수영은 물속에 몸을 잠기고 하고 물 위로 점프하지 않는다. 잠수는 20m 깊이에서 3~5분 정도 반복하는 것이 일상이나 800m 깊이까지 내려가 20분간 잠수할 수 있다.

현재 벨루가의 개체수는 20만 마리로 추정한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에 근접한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진 pxhere]

현재 벨루가의 개체수는 20만 마리로 추정한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에 근접한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사진 pxhere]

벨루가는 고도의 사회성을 가진다. 보통 2~25마리의 작은 무리를 이루지만 여름철 해안지역에서는 수백에서 수천 마리가 군집을 이룰 때도 있다. 무리는 어미와 새끼로 이루어진 그룹, 수컷끼리의 그룹, 암수가 혼합된 그룹 등 3개의 형태가 있다. 무리 안에서는 상호 협력하며 사회생활을 유지한다. 특히 먹이를 사냥할 때 협력하여 물고기를 얕은 곳으로 몰거나, 서로 둘러싸고 탈출을 막는 행동은 잘 알려져 있다.

먹이는 지역과 계절에 따라 연어, 대구, 명태, 청어, 넙치, 빙어, 오징어, 새우, 게 등 다양하다. 하루에 체중의 2~3%를 섭취한다. 먹이를 찾는 것은 보통 20~40m 깊이에서 이루어지지만 때로는 700~800m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7개의 목뼈는 다른 고래와 달리 융합되지 않고 분리되고,  유연한 움직임을 제공해 먹이 탐지를 쉽게 한다.

성적 성숙 연령은 수컷이 9~15년, 암컷은 8~14년이다. 12~15개월의 임신기간을 거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갓 태어난 새끼는 몸길이 1.5m, 체중은 80kg 정도이며 피부는 회색이다. 생후 18개월에 이유를 한다. 성숙된 암컷은 3년마다 새끼를 낳는데 25년이 되면 번식 능력이 감소되기 시작한다. 40년 이상의 암컷이 새끼를 낳았다는 기록은 없다. 평균 수명은 30~40년이다.

18세기부터 유럽, 미국, 러시아는 상업적으로 고래를 잡아 북극 지역의 벨루가 개체군이 많이 감소했다. 고기는 물론 가죽과 지방까지 여러모로 활용되었다. 멜론에서 나오는 기름은 기계부품과 시계에 고급윤활유로 이용됐으며, 지방은 등대의 불빛을 밝혔다. 두껍고 단단한 가죽은 방앗간의 벨트와 말의 장신구, 신발끈, 방탄조끼에 쓰였다. 1920년대에는 어부들이 잡는 물고기를 벨루가가 대량으로 먹기 때문에 어업에 위협이 된다며 보상금을 주고 벨루가를 포획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1915년부터 2014년까지 러시아에서만 8만6000마리가 포획됐다. 캐나다와 미국,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을 보면 포획 숫자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벨루가의 개체수는 20만 마리로 추정한다.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은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멸종위기에 근접한 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상황에서는 가장 취약한 종의 대표로 벨루가를 꼽고 있다.

지금까지는 북극의 추위와 얼음이 사람의 접근을 막아주었다. 앞으로의 지구온난화는 북극 얼음을 얇게 만들어 사람과 선박이 용이하게 왕래하게 한다. 포획이 증가할 수 있고 소음과 공해물질의 배출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활동에 장애를 준다. 이전에는 북극에 서식하지 않았던 밍크고래와 혹등고래가 북상한다. 먹이 경쟁을 해야 하는데 덩치가 큰 이들에게 밀린다. 등지느러미가 커 얼음 밑에서 활동이 어려웠던 범고래가 얼음이 없어져 벨루가를 쉽게 포획할 수 있게 된다. 기후변화 시대에 멸종을 재촉하는 이유다.

국내는 3개 수족관에서 5마리의 벨루가를 보유하고 있으나 편한 입장이 아니다. 좁은 수족관에 가두지 말고 바다로 보내라는 요구가 많다. 일부 수족관은 이를 수용하고 실행에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실 고래는 활동반경이 넓어 규모가 작은 국내의 수족관에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환영할 일이지만 걱정도 생긴다.

서식지에 방사하기 전 적응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장소는 국내가 아니고 서식지 인근 지역이라야 한다. 먼저 그 지역까지 장거리를 장시간 이동해야 한다. 장시간 이동은 위험이 뒤따른다. 적응훈련은 장기간이 필요하다. 방사 후에는 자연서식지에 적응과 생존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수년간 수족관에서 주는 먹이와 환경에 익숙한 개체로서는 이 과정이 고통의 연속이 될 수도 있다.

망망대해로 보내는 것만이 벨루가를 행복의 보금자리로 이끄는 길이 되는가? 수족관의 환경과 관리방법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없겠는가? 좀 더 고민할 여지가 많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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