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종말 1분 남았다" 난리치더니, 전용기 타고 간 英총리

중앙일보

입력 2021.11.02 14:02

업데이트 2021.11.02 16:51

“인류는 기후변화에 있어 오래전에 남은 시간을 다 썼다.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 1분 전이며, 우리는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한다”

1일(현지시간)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개막식에서 개최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가 남긴 말이다. 평소 낙천적이고 유머 넘치는 성격으로 유명한 그도 이날만큼은 진중한 표정으로 연설에 임했다. 다만 그의 발언은 곧 ‘기후 위선’을 지적하는 환경단체의 공격 대상이자,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인류의 딜레마를 나타내는 말이 됐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개막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개막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국제사회의 지도자들이 말로는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현실에선 그들의 위선과 허풍(hot air)만 COP26 회의장 상공을 덮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각국 대표단과 경제 인사들이 약 200~400대의 전세기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슨 총리도 무거운 내용의 연설을 마치고 세계 각국에서 온 지도자들을 환대한 뒤 전세기를 이용해 런던으로 돌아가면서 구설에 올랐다. COP26 회의가 열린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런던까지 기차로는 약 4시간30분, 항공편으론 약 1시간30분이 걸린다. 3시간을 아끼는 가볍고 빠른 교통편을 사용한 대가는 약 3t의 이산화탄소 배출이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1일 개막한 COP26 환영회에서 보리스 존슨(가운데) 영국 총리가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글래스고에서 1일 개막한 COP26 환영회에서 보리스 존슨(가운데) 영국 총리가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승객 1명이 1㎞ 이동하는 데 비행기는 탄소 285g을 배출한다. 이는 기차(14g)의 20배에 달하는 수치다. 전세기를 사용할 경우 1인당 탄소 배출량은 일반 비행기 사용 시보다 10배가량 더 늘어난다.

이에 대해 총리실 대변인은 “총리는 항상 시간적 제한에 쫓기고 있다”며 “비행기에는 친환경 항공유가 사용됐다. 이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쇄할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환경 단체 ‘교통과 환경’ 관계자는 “총리가 탄 전세기의 연료 중 35%만 친환경유고, 나머지는 일반 항공유”라고 반박했다.

다만 워싱턴포스트(WP)는 “존슨 총리는 약속 시각을 맞춰야 하는 각국 정상들과 기업 임원 중 한 명이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용기 ‘에어포스원’ 등 항공기 총 5대를 띄워 글래스고로 향했다. 이들이 대서양을 건너며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1000t에 달한다.

세계 지도자들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유엔 기후정상회의 개막일을 기념하는 저녁 리셉션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지도자들이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COP26 유엔 기후정상회의 개막일을 기념하는 저녁 리셉션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COP26이 진행 중인 영국 글래스고 스코티쉬이벤트캠퍼스(SEC) 내 정상회의장 앞에 인파가 몰려 있다. 뉴시스

1일(현지시간) COP26이 진행 중인 영국 글래스고 스코티쉬이벤트캠퍼스(SEC) 내 정상회의장 앞에 인파가 몰려 있다. 뉴시스

또 비단 전세기 이용 문제만이 아니다. COP26 회의장 밖에는 190여 개국 대표단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백 대의 대형 승용차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이들은 대표단을 빠르게 옮기기 위해 시동을 걸고 공회전 상태로 대기하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띈 건 ‘비스트’(Beast·야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미 대통령 전용 차량이었다. 이 차는 1마일(약 1.6㎞) 당 약 122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달리 마일당 4㎏의 이산화탄소를 뿜는다.

이에 WP는 “회의에서 정치인, 외교관들은 지속가능한 교통과 기후변화 퇴치를 논의했다”며 이들의 위선을 지적했다. 환경 단체 ‘녹색 동맹’의 헬레네 베넷 정책 고문도 “전용기는 기후의 재앙이다. 더 친환경적으로 여행할 필요가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3월19일 이스라엘 의회에 출석한 카린 엘하라 이스라엘 기반시설 및 에너지·수자원장관의 모습. 그녀는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참석이 무산됐다며″유엔이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뉴시스]

지난 2019년 3월19일 이스라엘 의회에 출석한 카린 엘하라 이스라엘 기반시설 및 에너지·수자원장관의 모습. 그녀는 1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6) 정상회의 참석이 무산됐다며″유엔이 휠체어를 타고 행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뉴시스]

한편, 이날 COP26 회담장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환경 관련 이스라엘 정부 실무 책임자인 카린 엘하라 기반시설 및 에너지‧수자원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 하는 일도 있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엘하라 장관이 COP26 행사장 밖에서 2시간 동안 기다리다 결국 80㎞ 떨어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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