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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김명수·권순일, 진보 판사들의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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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 판단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공판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8일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심판 각하 결정을 할 때 재판관 9인 중 3인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으로, 모두 진보 성향이다. 특히 김 재판관은 21쪽의 보충의견도 냈다. 여기엔 이런 대목이 있다.

“재판의 구조와 외관을 공정하게 형성해야 할 최소한의 헌법적 요청도 무시했다. (중략) 국제규범의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승인되고 있는 사법권 독립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그 위배의 정도는 우리 헌법상으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통렬한 비난이다. 정작 임 전 부장판사는 이른바 ‘사법 농단’ 재판에서 1·2심 무죄를 받았다. 1심의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는 2심에선 ‘부적절한 재판 관여’로 낮아졌다. 잘못은 있지만 중대한 정도는 아니란 의미다. 괴리다.

2018년 하반기 김 재판관 지명 때의 일이 떠올랐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민변 출신 이석태(공교롭게 3인 중 한 명이다) 변호사를 재판관으로 지명하는 대신 민주당이 김 대법원장의 최측근인 김기영 당시 지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는 ‘트레이드설’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사청문회에서 김 대법원장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나왔는데, 그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가 김 대법원장의 청문회 준비사무실에 방문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후에야 비공식 자문그룹 중 한 명이라고 인정하며 “막판이 되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서 좀 죄송스러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는 김 대법원장의 측근인가 아닌가.

김 재판관 자신이 심판 사건과 무관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2017년 대법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 조사 때 조사 대상이었다. 이번 탄핵을 주동한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시 연구회의 기획총무였고 그는 운영위원이었다. 더군다나 회장 출신인 김 대법원장은 탄핵 국면에서 임 전 부장판사 관련 거짓말을 한 게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과연 김 재판관의 이번 결정 관여는 적절했나.

사실 임 전 부장판사는 최초 ‘법관 탄핵’ 사례가 될 정도로 ‘사법 농단’ 사건의 거물은 아니다. 외려 2019년 시민사회나 정의당의 탄핵 명단 앞머리는 권순일 전 대법관이 차지했었다. 결국 기소되지 않고 유야무야됐고 퇴임 직전인 지난해 7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무죄 판결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전후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8차례 방문이 있었고 권 전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로부터 월 1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이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 이미지.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각하 그래픽 이미지.

진정 놀라운 건 사법부 내에 ‘사법 농단’을 대할 때만큼의 비판 의식도, 용기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지배하는 건 침묵이다. 당사자인 권 전 대법관이야 그렇다 쳐도 김 대법원장과 판사들, 특히 진보 성향 판사들이 사실상 묵언 중이다. ‘사법 농단’ 당시 이들과 맞섰던 김태규 당시 울산지법 부장판사의 주장이다.

“조용히 지나가기만 기다리며 숨소리도 안 나게 엎드려 있다. 비겁한 자들이다. ‘사법 농단’ 사람 중 사익을 도모한 이 하나 없다. 법원의 업무 과잉을 막자는 의미에서 상고법원을 도입하려던 것이었다. 추진 과정에서 (정권에) ‘우리 얘기를 들어 달라’며 생색내기용을 했을 뿐이다. 직권남용 외에 뇌물이 있느냐, 변호사법 위반이 있느냐. 권 전 대법관은 이미 변호사법 위반에 뇌물 의심도 있다. 이런 기준이라면 온 법원이 뒤집어져야 했다.”

김 전 부장판사는 그러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정치의 전위조직이다. 법관의 기본인 공정 균형 감각이 결여돼 있다”고 주장했다. 끼리끼리 봐준다는 취지다. 과도한 비판일 수 있다. 그러나 ‘무죄’ 날 사안을 두고도 중대한 범죄라고 펄펄 뛰던 이들이, 대법관의 재판거래란 초유의 부패 의혹을 두고도 누구 하나 ‘공적 확인과 해명’(김 재판관 보충의견)을 하지 않는 데 경악한다. 이네들의 뒤틀린 천칭이 두렵다.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