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지구가 추락하지 않는 이유는…조선 유학자의 ‘우주설’

중앙일보

입력 2021.10.28 11: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12)

국산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KSLV-2) 누리호가 10월 21일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솟아올랐다. 누리호는 이날 위성궤도 안착에는 실패했지만 첫 도전에서 고도 700㎞ 목표에 도달했다. 미완이지만 세계 10번째 자력 발사국으로 우주에 첫발을 뗀 것이다.

일찍이 조선시대에도 우주와 천문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 있었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이란 유학자는 78세에 ‘우주설’을 지었다. “대지가 두텁고 무거운 데도 추락하지 않는 것은 하늘을 둘러싼 대기가 쉬지 않고 빠르게 돌면서 대지를 떠받치기 때문”이란 이론이다. 이 학설은 조선 후기 홍대용 등의 우주설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오랜 사유가 나로호 발사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북 구미시 임수동에 위치한 장현광을 모신 동락서원. [사진 송의호]

경북 구미시 임수동에 위치한 장현광을 모신 동락서원. [사진 송의호]

장현광은 자신의 호에도 우주에 대한 관심을 담았다. 그가 44세에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여헌(旅軒)’이라는 호에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있다. 이전까지 그는 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여헌설(旅軒說)’이란 글에서 그 호를 쓰게 된 까닭과 의미 등을 서술하고 있다.

장현광은 더 일찍 호를 쓰지 않은 것은 자신의 덕과 지식이 무르익지 않아 호를 부를 만한 자격이 없었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존비(尊卑)와 장유(長幼)가 뚜렷한 시대 호가 없으면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여러모로 불편을 줄 수 있어 호를 쓴다고 밝히고 있다.

동락서원에 보관된 장현광 선생 초상화. [사진 송의호]

동락서원에 보관된 장현광 선생 초상화. [사진 송의호]

여헌은 ‘나그네의 집’이라는 뜻이다. 여헌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임진왜란 등을 당하면서 많은 곳을 옮겨 다녔다. 그래서 여헌에서 ‘여(旅)’자를 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뜻이 자신이 전전한 생애에 한정되지 않고 천지간 존재하는 만물이 모두 나그네 아닌 것이 없다고 덧붙인다. 천지도 생성 소멸하니 이 또한 여(旅)의 개념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헌(軒)’은 집을 뜻한다. 그러면 전전하는 형편에 무슨 헌이 있을까. 여헌은 이렇게 말한다.

“높은 당우(堂宇)만이 헌이 아니다.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 밑도 내 헌이요, 흰 구름이 머무는 바위 위도 내 헌이다. 풀이 우거진 개울가도 내 헌이요, 맑은 바람이 부는 산기슭도 내 헌이다. 하루 동안 헌도 있고 더러는 며칠간의 헌도 있고, 또 몇 달간 헌도 있고, 때로는 한 계절을 지나는 집도 있다.”

장현광의 대표 저술인 『역학도설(易學圖說)』의 목판.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장현광의 대표 저술인 『역학도설(易學圖說)』의 목판.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여헌은 이렇게 대자연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했다. 이 헌에서 여헌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는가? 그는 이렇게 답한다.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도 만나고, 시를 좋아하는 한량도 만나고 농사꾼도 만난다. 더러는 생각이 딴판인 몹쓸 인간도 마다하지 않는다. 만나 무엇을 하는가? 문사를 만나면 글을 이야기하고 시인을 만나면 시를 읊고 농부를 만나면 농사일을 말하고 어부를 만나면 고기잡이를 이야기한다.”

여헌은 이렇게 선, 불선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과도 마음을 열어 함께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헌은 나아가 “생성 소멸하는 형기(形氣)의 세계는 우주의 객이요. 불변의 이(理)는 우주의 주인”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우주와 동체로 만들어 자유인이 되려 했다. 장현광은 이렇게 우주를 사유하고 삶 속으로 끌어들인 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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