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세정의 시선

이재명 달변, 윤석열 구설…진짜 품격 있는 '대통령의 언어'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대선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유력 대선 주자는 국민이 공감하는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중앙포토,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대선 경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유력 대선 주자는 국민이 공감하는 품격 있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중앙포토,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구설에 휘말린 적이 있다. 서울 소망교회 장로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2004년 5월 31일 새벽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해 '서울을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서'를 직접 낭독했다.
 "서울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합니다"라는 발언이 공개되자 발끈한 불교계는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은 "대권에 눈이 멀어 신성한 종교까지 이용하느냐"며 비난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531만여표 차이로 정동영 후보를 압도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워낙 강했기 때문인지 서울시장 시절의 말실수는 잊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의 잦은 말실수가 논란이다. 제2차 오일 쇼크 당시 최고의 경제 전문가를 등용해 서민 물가를 안정시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강조하려다 곤욕을 치렀다. 윤 후보는 1980년 봄 서울대 법대 2학년생 시절 교내 모의법정에서 판사 역할을 맡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런 특별한 경험이 있다 보니 광주의 5·18 비극에 공감하는 자신의 진심이 곡해 당했다며 억울해한 듯하다.

국민의힘 원희룡 대선 경선 후보가 24일 경기 성남시 백현동 개발 관련 계좌와 대장동 개발 관련 주주협약서를 공개하고 있다. 원 후보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경기지사)를 고발하겠다고 말했다.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원희룡 대선 경선 후보가 24일 경기 성남시 백현동 개발 관련 계좌와 대장동 개발 관련 주주협약서를 공개하고 있다. 원 후보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경기지사)를 고발하겠다고 말했다.임현동 기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검사 시절 대장동 자금 수사 문제를 공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국민의힘 경선 후보의 검사 시절 대장동 자금 수사 문제를 공격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하지만 뒤늦게 사과하는 과정에서 SNS에 올린 '개 사과 사진'으로 스텝이 꼬여 안 먹어도 될 욕까지 추가로 먹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SNS는 음식에 비유하면 복(鰒)요리 같아서 (별도 자격증 없이) 아무나 잘못하면 사람 죽는다"며 정곡을 찔렀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정치는 원래 말로 하는 것"이라며 "실언(失言)도 실력"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경기지사)는 청산유수다. 변호사 출신이기도 하지만 언변이 남달리 화려하다. 욕설 음성 파일이 폭로돼 곤욕을 치렀을 정도로 때로는 육두문자까지 동원해 비타협적으로 속사포처럼 격정을 쏟아낸다. 최근 '대장동 게이트' 의혹에 휘말리면서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도 경기도 국감장에 등판했고,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도 밀리지 않고 정면으로 되받아쳤다. 수차례 헛웃음을 흘려 국민 무시라는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재명 캠프 수행실장인 김남국 의원은 "국감 출석이 (이 지사 홍보를 위해) 100억원짜리 광고를 한 것과 다름없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런데 국감 직후 MBN·매일경제가 알앤써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18세 이상 남녀 1020명)의 52.8%는 이 후보가 '못했다'고 답했고, 33.8%만 '잘했다'고 했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서는 45.9%가 '이 후보가 직접 관련이 있다'는 반응을 보였고, 17.2%는 '이 후보의 관리 책임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후보와 무관하다'는 응답은 14.3%, '전임 정권의 권력형 게이트'라는 응답은 16.8%였다. 노련한 언변에도 비판 여론을 돌려놓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강미은 교수는 "야당의 질문 공세에 미끄럽게 잘 빠져나갔지만, 이 지사에게 부정적인 응답이 높게 나왔다는 사실은 유권자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의미"라며 "말 잘한다는 것은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설득력 있게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2월 25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이 공감하는 '대통령의 언어'를 여러번 강조했다고 한다. [중앙포토]

2003년 2월 25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이 공감하는 '대통령의 언어'를 여러번 강조했다고 한다. [중앙포토]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주간은 청와대에서 모두 8년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듬었다. 연설비서관 당시 경험을 기록한 『대통령의 글쓰기』에서 그는 "(두 대통령은) 독서와 사색,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이를 통해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키웠다. 그리고 그것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의 언어는 국민이 알아듣도록 쉽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서 나온다"고 역설했다면서 국민이 진정성을 느끼게 하려면 "솔직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강원국 주간은 책에서 조언했다.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 세 치 혀가 백만 군사보다 더 강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삼촌지설(三寸之舌) 일화를 실었다. 역사에는 세 치 혀를 잘 못 놀려 화를 입은 사례가 숱하게 나온다. '오럴 리스크(Oral risk)'가 '오럴 해저드(Oral Hazard)'로 번져 국민에게 불똥이 튀는 재앙은 피해야 한다. 막말이 일상이 된 여의도 정치판이라지만, 적어도 대선주자는 입을 깨끗이 하고 말을 순화해야 한다. 소통과 공감의 역량을 보여줬고,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밝히는 품격있는 '대통령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버락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에겐 아직 너무 먼 꿈인가.

대한민국 대선 후보들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품격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

대한민국 대선 후보들의 입이 거칠어지고 있다. 품격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관련기사

입과 말이 정치인의 성패 판가름 #윤석열 말실수, 이재명 청산유수 #전문가 "정치인은 실언도 실력"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연설비서관 #"진정성 담긴 말이 국민 공감 얻어" #오바마처럼 '품격 언어'는 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