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장세정의 시선

97세에 칼럼 쓰는 언론인의 광복과 자유

중앙일보

입력 2021.08.16 00:37

업데이트 2021.08.1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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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시절.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맨 오른쪽이 황경춘 선생. [사진 황경춘]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시절. 빛바랜 흑백 사진 속 맨 오른쪽이 황경춘 선생. [사진 황경춘]

AP통신과 TIME지 서울지국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황경춘(97) 선생은 평생 영어와 일본어 간행물을 탐독하며 세상의 변화를 살피고 글을 써왔다. 자유칼럼그룹 사이트에 거의 월 1회 칼럼을 쓰고 있다. 장세정 기자

AP통신과 TIME지 서울지국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황경춘(97) 선생은 평생 영어와 일본어 간행물을 탐독하며 세상의 변화를 살피고 글을 써왔다. 자유칼럼그룹 사이트에 거의 월 1회 칼럼을 쓰고 있다. 장세정 기자

"아흔살이 넘은 원로 언론인이 아직도 꾸준히 칼럼을 쓰신다던데, 참 놀랍다." 올 초 지인에게서 이 말을 들었을 때 귀가 번쩍 뜨였다. 1936년생인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가 지난해 1월 별세할 때 84세였다. 90세가 넘어서 칼럼을 쓴다니 한국판 기네스북에 오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졌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AP통신과 타임(TIME) 서울 지국장을 역임한 황경춘(97) 선생이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시작해 지난달까지 자유칼럼그룹 홈페이지에 만든 '황경춘 오솔길' 코너에 거의 매월 1회씩, 지금껏 누적 223건의 칼럼을 써서 올렸다. 연락처를 수소문하던 중 뜻밖에 관훈클럽(중견 언론인 모임) 회원 주소록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알고 보니 AP통신 서울 특파원이 된 57년 그해에 창립한 관훈클럽의 초기 회원이었다. 자택에서 인터뷰하면서 1924년에 태어나 일본 강점기와 8·15광복, 6·25전쟁과 5·16, 12·12와 5·18, 87년 민주화 운동 등 한반도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격변을 모두 현장에서 경험한 원로 언론인의 삶의 궤적을 들을 수 있었다.

황경춘 전 AP통신 서울지국장은 97세이지만 지난달까지 자유칼럼그룹에 기명 칼럼을 실었다.

황경춘 전 AP통신 서울지국장은 97세이지만 지난달까지 자유칼럼그룹에 기명 칼럼을 실었다.

 집안의 뿌리는 황해도 개성이었는데 혼란을 피해 조부 때 경남 남해로 이주했다. 부친이 미쓰비시 탄광에서 일할 때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다. 3학년 때 "한국에 가서 우리말을 공부하라"는 아버지 뜻에 따라 귀국해 남해초등학교에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고, 5년제 진주중학을 졸업했다. "중학 선배였던 하숙집 주인에게서 3·1만세 운동 이야기를 듣고서야 민족이 뭔지 처음 알았고 일제의 황국신민(皇國臣民) 교육에 속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도쿄 주오(中央)대 법학과 입학 6개월 만에 학도병 모집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남해로 돌아왔다. 이병주 대하소설『지리산』에는 이 무렵 학도병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가 저항한 주인공 박태영이 등장한다. 황 전 지국장도 지리산으로 도피하려 했으나 결국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의해 45년 3월 10일 부관(釜關) 연락선에 실려 '징병 1호'로 끌려간다.

황경춘 선생이 청년기를 보낸 일제 시대와 8.15 해방 및 6.25전쟁 등을 배경으로 당시 청년들의 삶과 고뇌, 이념 갈등을 소재로 대하소설『지리산』을 쓴 작가 이병주 선생.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

황경춘 선생이 청년기를 보낸 일제 시대와 8.15 해방 및 6.25전쟁 등을 배경으로 당시 청년들의 삶과 고뇌, 이념 갈등을 소재로 대하소설『지리산』을 쓴 작가 이병주 선생. [경남 하동군 이병주문학관]

 일제가 한국인 징병자들로 조직한 5개 중대 중 하나가 있던 이바라키(茨木) 현 부대에 배치돼 전쟁용 군량미 생산에 동원됐다. 도쿄 인근이라 미군과 호주 공군의 기총소사 공습에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도 많았다.
 그에게 8·15는 사흘 늦게 왔다. 8·15 당일엔 작업을 시키지 않고 영내에 대기시켰다. 8월 18일 부대 밖 마을 공회당 화장실에서 일본어 방송을 듣고서야 이상한 낌새를 챘다. "전쟁이 끝났다. 절대 비밀로 하라"는 일본인 기간병의 말을 듣고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부산과 시모노세키 사이 바다에 기뢰가 매설돼 선박 침몰 사고로 떼죽음하는 아비규환 와중에 살아남아 귀국했다. 해방 이후 복학할 수도 없어 남해초등학교에서 '대용 교원'으로 일하던 중 미군의 영어 통역을 도와준 것이 인연이 돼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미 군정이 발급한 교원 면허증으로 부산 제일공고 영어교사로 일하다 미 공보원(USIS)에 채용돼 오전에 출근하고 오후엔 '투잡'으로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일했다. 57년 AP통신으로 옮겨 31년간 서울 특파원과 지국장으로 활약했다. 광주항쟁 2개월 뒤 외신 보도를 문제 삼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NYT 등 다른 외신 기자들과 함께 사흘간 강제 구금당하기도 했다. 87년 타임 서울 지국장으로 옮겨 92년까지 일했고, 이후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황경춘 전 AP통신 서울지국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 황 지국장은 김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 맞서 목숨 건 단식투쟁을 결행했을 때 직접 취재한 인연이 있다. [사진 황경춘]

황경춘 전 AP통신 서울지국장과 김영삼 전 대통령. 황 지국장은 김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박정희 유신 독재 체제에 맞서 목숨 건 단식투쟁을 결행했을 때 직접 취재한 인연이 있다. [사진 황경춘]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차별받으며 꿈많은 청춘을 보냈으니 돌아보니 허망하다. 무수한 사건이 있었지만 8·15 광복이 다른 모든 사건보다 으뜸가는 중요한 역사의 한 토막이었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미국·일본과 손잡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 미국·일본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국익과 생존을 위해서 민주주의의 보루로써 가깝게 지내야 한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기대하며 투쟁한 용감한 국민을 언론인으로서 지켜봤다.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에서 가장 근본이다."
 100세를 앞둔 원로 언론인에게 제국주의 강압 통치에서 벗어난 광복이 무엇보다 소중하듯, 민주화로 쟁취한 언론 자유도 목숨처럼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광복이 없었다면 언론인 황경춘은 97세가 되도록 우리말로 칼럼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거대 여당의 '언론 족쇄 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막지 못하면 표현의 자유도 한순간에 질식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얻은 광복이며, 어떻게 얻은 언론 자유인가.

AP통신 서울 특파원 시절 황경춘 전 지국장이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는 모습. [사진 황경춘]

AP통신 서울 특파원 시절 황경춘 전 지국장이 타자기로 기사를 작성하는 모습. [사진 황경춘]

김대중 대통령이 1987년 5월 당시 황경춘 TIME지 서울지국장에게 써준 서예 작품. 조선 시대에 정치 개혁을 추진한 조광조가 중종 임금에게 올린 상소의 일부다. '언로가 통하고 막히는 것은 국가에 매우 중요해서, 통하면 다스려지고 평안하며 막히면 어지러워지고 망한다(言路之通塞, 最關於國家, 通則治安, 塞則亂亡)'는 내용이다. 조광조의 원문을 보면 이 문장 바로 뒤에 '따라서 임금은 언로를 넓히기에 힘써야 한다(故人君務廣言路)는 구절이 이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적 언론관을 엿보게 한다. [사진 황경춘]

김대중 대통령이 1987년 5월 당시 황경춘 TIME지 서울지국장에게 써준 서예 작품. 조선 시대에 정치 개혁을 추진한 조광조가 중종 임금에게 올린 상소의 일부다. '언로가 통하고 막히는 것은 국가에 매우 중요해서, 통하면 다스려지고 평안하며 막히면 어지러워지고 망한다(言路之通塞, 最關於國家, 通則治安, 塞則亂亡)'는 내용이다. 조광조의 원문을 보면 이 문장 바로 뒤에 '따라서 임금은 언로를 넓히기에 힘써야 한다(故人君務廣言路)는 구절이 이어진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민주적 언론관을 엿보게 한다. [사진 황경춘]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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