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패전… 갈라선 동서독/독일 분단에서 통일까지 “45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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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1년 베를린 장벽구축 냉전결정/브란트 동방정책이 화해 전환점/작년 9월 동독인 대탈출→호네커 실각→장벽개방→통독의 길로
1945년 5월8일 독일군의 무조건 항복으로 유럽에서의 2차대전은 끝났다. 이해 8월30일 독일은 미ㆍ영ㆍ불ㆍ소 전승4개국에 통치권을 이양,분할통치되면서 분단이 시작됐다.
○49년 동서독 공식출범
48년 6월20일 미ㆍ영ㆍ불은 3개국 관할지역 공동으로 새로운 화폐제도를 도입했고 이에 맞서 소련도 4일후 동쪽지역에 별도의 화폐제도를 도입,동서독이 경제적으로 갈라졌다. 이해 6월24일부터 소련은 베를린봉쇄를 시작,서방연합국은 10여개월간 「베를린 공수」를 단행했으며 49년 5월12일 소련은 베를린 봉쇄를 해제했다.
49년 5월23일 서독이 독일연방공화국(BRD)으로 정식출범했으며 이해 10월7일 동독도 독일민주공화국(DDR)으로 출범,동서독분단이 공식화됐다.
52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이 독일의 중립통일안을 제시,독일은 통일의 기회를 맞았으나 아데나워총리의 서독정부가 이를 거절,통일의 꿈이 무산됐었다.
54년과 55년 동서독이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각각 가입,분단은 고착화 돼갔다. 54년 10월23일 서독은 나토에 가입했고 55년 3월5일부터 점령군이 주둔군으로 바뀌면서 베를린을 제외한 서독은 주권을 회복했다. 동독은 55년 5월14일 바르샤바조약기구에 가입했다. 이해 12월2일 서독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와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이른바 할슈타인원칙을 선포했다.
이와 같은 동서독간 분단과 대결의 국면은 61년 8월13일 동독이 베를린장벽을 구축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3m높이에 총연장 1백66㎞인 이 벽을 넘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여다 희생된 사람은 80여명에 달했다.
이같은 분단과 대결의 역사는 69년 브란트 서독총리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그해 10월28일 브란트총리는 할슈타인원칙을 폐기하고 1민족 2국가론을 주창하는 등 동독과의 평화공존을 모색했다. 70년 3월19일 브란트총리는 분단 후 서독총리로서는 최초로 동독을 방문,제1차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5월21일에는 2차정상회담이 열렸다.
○양독 정상 상호 방문
동서독은 72년 5월26일 민간인 상호왕래를 가능케한 교통조약을 체결한데 이어 이해 12월21일에는 기본조약을 체결,양독간 대화와 교류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73년 9월18일 동서독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다.
이후 동서독은 본과 동베를린에 상주대표부설치에 합의했고(74년 3월14일) 81년에는 슈미트 서독총리가 동독을 방문했으며 82년 11월20일에는 함부르크∼베를린간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등 점차 통일에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87년 10월7일부터 11일까지 호네커 동독 공산당서기장이 서독을 방문,분단 후 서독을 방문한 최초의 국가원수가 됐다.
독일통일에의 극적 전기는 89년에 마련된다.
89년 5월2일 헝가리가 오스트리아국경의 철조망철거를 시작하고 9월11일 모든 동독시민에게 국경을 개방,수천명의 동독주민들이 이를 통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하면서 동독 공산체제는 무너져갔다.
이해 5월7일 라이프치히에서 선거조작에 항의,시위를 벌이던 1백여명이 체포됐으며 8월에는 동베를린(상주대표부)ㆍ프라하ㆍ부다페스트ㆍ바르샤바 등지의 서독 대사관에 동독주민이 몰려 서독에의 망명을 요구했다.
10월7일의 동독건국 40주년 행사는 반정부시위로 바뀌었고 소련의 고르바초프도 호네커에게 개혁을 촉구했다. 10월9일부터 매주 월요일 라이프치히에서는 수십만명이 참가하는 데모가 벌어져 동독민주화의 진원지가 됐다. 10월18일 호네커의 사임에도 불구,시위는 날로 확산됐으며 서독 이주민수는 계속 늘어갔다.
11월9일 동독정부가 주민을 무마하기 위해 장벽을 개방하면서 바로 동독의 국가해체가 시작됐으며 독일통일은 급격히 진전됐다.
90년 2월1일 모트로프 동독총리가 소련 고르바초프와 회담한뒤 통독안을 제시했다.
3월14일에는 독일통일의 외부문제를 규정하기 위한 「2+4」회담을 시작했다.
○경제ㆍ사회 등 통합조약
3월18일 동독의 첫 자유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조속한 통일을 주장하는 기민당이 승리,통일을 앞당겼다.
4월12일 드 메지에르총리는 사민당 등과 대연정을 구성한데 이어 서독과의 통화통합에 관한 회담을 본격화했다.
7월1일 화폐ㆍ경제ㆍ사회통합에 관한 국가조약이 발효,동서독은 사실상 통일이 됐다. 이날 동서베를린 및 동서독의 모든 도로는 완전 개통됐다.
7월16일 소련이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허용,독일통일에 관한 「외부문제」가 사실상 모두 해결됐다.
8월2일 동서독은 12월2일 총선에 관한 선거조약을 체결하고 8월22일에는 통일날짜를 10월3일로 최종 확인했다.
8월31일 통일조약이 체결됐다. 9월12일의 모스크바 「2+4」회담은 이를 조약으로 체결,독일통일의 내외문제는 모두 해결됐다.
9월20일 동서독의회는 통일조약을 비준했고 9월25일에는 서독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이에 서명했다.
독일은 3일 정식으로 통일됐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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