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돌 흰돌] 최강자와 신예강호 차이는 '두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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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의 한국대표팀은 이창호9단(28).원성진5단(18).박지은4단(21).홍민표3단(20).허영호2단(18) 등 5명이다. 평균연령 21세의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팀이고 여류기사도 사상 최초로 한명 끼어 있다.

누군가 재미있게 구성한 팀이 아니다.이들 중 이창호9단만 그냥 뽑혔을 뿐 나머지 4명은 철저히 실력 대결을 벌여 선발됐다. 조훈현.유창혁 등 정상권은 물론 같은 신예 중에서도 송태곤.박영훈 등 더 유명한 인물들이 이들에게 요소 요소에서 격침된 것이다.그런데도 이 팀은 출범 당시부터 한국대표 사상 최약체로 평가받아왔다.

과연 이 팀은 지난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농심배 1라운드에서 1승도 건지지 못하고 2명이 떨어져나갔다. 선봉 허영호2단이 일본의 장쉬9단에게, 홍민표3단은 중국의 왕레이8단에게 패배했다. 국내에서는 정상급과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이들이 국제무대에선 왜 통하지 않았을까.

바둑도 '이름값'이란 게 있다. 이창호9단도 처음 국제무대에 나섰을 때는 (그때 이미 국내에선 최강자로 지목받고 있었다)누구에게나 자주 졌다. 하지만 일단 관록이 쌓이자 결승전에만 가면 외국기사에겐 단 한번도 지지 않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왔다.

한국이 수없이 국제대회를 휩쓸어왔지만 우승자는 이창호.조훈현.유창혁.서봉수.이세돌 5명 뿐이다. 신예들은 그 위명과 달리 국제무대에선 아직 우승컵을 따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창호-이세돌 같은 최강자급과 이들 신예강호들 사이의 진짜 실력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프로들은 "두집을 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한집이란 주장도 있다. 두집이라 쳐도 끝내기의 자그마한 실수 하나로 사라지는 수치다. 세계를 호령하는 쌍두마차와 이정도라면 전보다 칼날이 조금이라도 무뎌졌을 조훈현.유창혁과는 얼추 비슷하다는 얘기인가!

그러나 대표팀에 조훈현.유창혁이 끼면 강팀이 되고 이들이 빠지면 약체가 된다.기묘한 현상이지만 그 이면엔 역시 '이름값'이란 게 있다는 생각이다. 위기에 봉착한 한국팀은 제법 관록이 쌓인 원성진에게 기대를 걸고 있고 그가 무너질 때 이창호9단이 과연 어디까지 이겨줄지 궁금해하고 있다. 단체전 최종주자로 나서서 한번도 지지 않은 명장 이창호가 홀로 조조의 백만대군을 상대한 조자룡의 위치에 선 것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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