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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어이없다, 공수처 정치공작에 이용되지 않기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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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호 03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와 최고위원들이 10일 오후 긴급회의를 마친 뒤 국회 의원회관 김웅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공수처 수사관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이날 오후 9시20분쯤 수사관들이 철수하며 11시간여 만에 중단됐다. [뉴스1]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와 최고위원들이 10일 오후 긴급회의를 마친 뒤 국회 의원회관 김웅 의원 사무실을 방문해 압수수색을 벌이고 있는 공수처 수사관들에게 항의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이날 오후 9시20분쯤 수사관들이 철수하며 11시간여 만에 중단됐다. [뉴스1]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0일 전격 수사에 나서면서 대선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야당에선 즉각 “공수처가 노골적으로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윤 전 총장도 강하게 반발했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26년간 수사를 해온 나로서도 어이가 없다”며 “공수처는 (피의자로) 입건하는 기준이 다른가 보다. 국민의 관심이 입건 기준인 모양”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정치 공작에 이용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입건’에 대한 소회를 묻자 “입건하라 하십시오”라고 말하곤 차에 올라탔다.

윤 전 총장 캠프는 이번 입건을 “정권의 눈치를 보는 권력기관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이라고 규정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를 형사사건 피의자로 입건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 김병민 캠프 대변인은 “허위 보도로 시작된 정치 공작의 제보자를 공익신고자로 둔갑시킨 데 이어 공수처는 윤 전 총장을 공격해 온 친정부 성향 단체의 고발을 계기로 신속 수사에 나섰다”고 쏘아붙였다. 김 대변인은 이어 “정치 공작의 진실은 반드시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을 잊지 마라. 국민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정권과 권력기관의 치졸한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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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전 총장 캠프 내부에선 “문재인의 칼(공수처)이 윤 전 총장을 목을 겨눴다”는 등 반발 수위가 훨씬 높은 발언들도 쏟아졌다. 당 지도부도 거세게 반발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울산시장 공작 사건의 재탕”이라고 했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공수처가 집권 세력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당 내부적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잖게 제기되는 모습이다. 이제 막 경선 레이스를 시작하는 당의 입장에서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는 악재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공수처가 결과를 언제 내놓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질질 끌거나 수사가 미궁에 빠질 경우 그 리스크는 야당에 더 쏠릴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10일 공수처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사진을 들어보이며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수사관들이 ‘최강욱·김건희’ 등으로 키워드를 한정해야 하는데 이날 검색된 키워드는 ‘조국·(정)경심·(추)미애’ 등이었다”고 비판했다. 임현동 기자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이 10일 공수처의 김웅 의원실 압수수색 사진을 들어보이며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수사관들이 ‘최강욱·김건희’ 등으로 키워드를 한정해야 하는데 이날 검색된 키워드는 ‘조국·(정)경심·(추)미애’ 등이었다”고 비판했다. 임현동 기자

공수처의 강제 수사를 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둘로 갈렸다. “대선이 6개월 남은 현 시점에서 시민단체 고발 사흘 만에 작정하고 수사한다는 건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김형준 명지대 교수)거나 “공수처 설치 배경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해 논란이 상당할 것 같다”(익명을 원한 정치학 교수)는 등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고발에 따른 절차적인 수사 착수로 딱히 정치 개입으로 보긴 어렵다”거나 “되레 윤 전 총장에게 보수층이 더욱 결집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는 분석도 나왔다.

수사기관이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검찰은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등과 관련해 수사에 나섰지만 이 후보자를 공개적으로 피의자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확정 일주일 전에 도곡동 땅에 대해 “제3자의 차명 재산인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제3자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진상 규명이 어려운 실정”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의 이 같은 모호한 태도에 당시 한나라당에선 “검찰이 정치에 개입한다”는 등 반발이 거셌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치열하게 경쟁했던 2012년 대선 막판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제기해 이슈로 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는 박근혜 후보를 직접 겨냥한 수사는 없었다. 당시 경찰은 대선 3일 전 “댓글 공작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공수처의 강제 수사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계기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 3층 김 의원실에 검사와 수사관들이 들이닥치면서다. 이에 김 의원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밤늦게까지 대치를 이어갔다. 김 의원은 “(공수처 수사관들이) 압수수색 영장도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다”며 적법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결국 공수처는 이날 오후 9시20분쯤 영장 집행을 중단하고 철수했다. 공수처는 “수사팀의 합법적 행위를 (국민의힘이) 다수의 힘으로 가로막고 그 과정에서 검사에게 고성과 호통·반말을 했다”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김 의원실에서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준석 대표는 회의 후 “공수처 검사들이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입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데 대해 상당히 유감”이라며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공수처장이 책임지고 해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의힘은 공수처 압수수색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진욱 공수처장과 압수수색 참여 검사·수사관 등 6명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불법 압수수색 등 혐의로 고발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적극 공세에 나섰다. 이소영 민주당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열고 “전직 검찰총장이자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입건된 건 그 자체만으로도 가벼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공수처는 국기 문란, 헌법 유린 의혹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낱낱이 규명해 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공수처가 윤 전 총장을 피의자로 적시한 것은 윤 전 총장과 사건의 연관성을 일정 부분 확인했다는 의미로 보인다”며 “윤 전 총장은 더 이상 중대 형사사건을 정치 공세로 폄하하지 말고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로 수사를 받으라”고 촉구했다.

대선주자들도 윤 전 총장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페이스북 글에서 “2021년 윤석열 검찰에서 ‘위험한 엘리트’들의 모습을 다시 본다. 예단하지는 않겠지만 서초동의 위험한 엘리트들은 이미 괴물이 되어버린 듯하다”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 지사는 “이제 개혁으로는 안 될 것 같다. 대수술이 필요해 보인다”며 “악성 종양은 제거하고 썩은 부위는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의 국정농단 사태다. 최순실 국정농단처럼 특검과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히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수처 수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국한될 수 있는 만큼 성역 없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특검으로 가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정치 공작의 실체가 드러났다. 몸통은 바로 국민의힘이었다”며 “공수처는 국가 공권력을 악용한 정치 검찰과 결탁한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국기 문란 범죄의 실체를 한 점 의혹도 없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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