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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4명 거친 아프간전 끝냈다…탈레반에 달린 바이든 평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년 전쟁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이 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현장 최고 지휘관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육군 제82공수사단장(소장)이다. [사진 미 중부사령부 트위터]

20년 전쟁을 끝내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는 마지막 미군이 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현장 최고 지휘관인 크리스토퍼 도너휴 미 육군 제82공수사단장(소장)이다. [사진 미 중부사령부 트위터]

지난 30일(현지시간) 어둠이 짙게 깔린 아프가니스탄 카불 국제공항 활주로. 미군 수송기 C-17이 마지막 승객을 기다렸다.

자정 직전 오른손에 M4 소총을 든 전투복 차림 군인이 비행기에 올랐다. 현장 최고 지휘관인 크리스 도너휴 미 육군 제82 공수사단장(소장)이었다.

오후 11시 59분 수송기는 굉음을 내며 이륙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약속한 철군 시한 8월 31일이 되기 1분 전이었다.

무인기(드론)와 B-52 폭격기, F-15 전투기 등이 수송기를 엄호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함께 비행했다고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워싱턴포스트(WP)에 전했다.

마지막 남은 군인과 외교관을 태운 수송기가 아프간 땅을 떠나면서 미국이 20년간 이곳에서 탈레반과 벌인 전쟁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후 케네스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화상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철군 완료와 미국인, 제3국 국적자, 취약한 아프간인을 대피시키는 임무가 끝났음"을 알렸다.

이날 이륙한 마지막 수송기 5대에 민간인은 한 명도 타지 못했다. 매켄지 소장은 민간인 탑승객을 막판까지 기다렸으나 끝내 공항까지 오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로부터 다시 한 시간쯤 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20년간 아프간 주둔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바이든은 아프간전 종료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31일 오후 1시 30분(한국시간 1일 오전 2시 30분) 발표할 계획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진 20년 아프간 전쟁 

아프간전은 미국 사상 최장기 전쟁으로 기록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1년 9ㆍ11테러 주범인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고, 2011년 그를 제거한 뒤에는 아프간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지원했다.

미국·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AP통신]

미국·나토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망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AP통신]

지난 20년간 미군 2461명과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군 1100명, 아프간인 등 모두 17만 명이 숨지고 수조 달러(수천 조원)가 투입됐다.

초기 임무는 테러와의 전쟁이었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오판으로 마지막 임무는 민간인 대피작전이 됐다. 미군이 주도하는 연합군은 지난 14일 이후 모두 12만3000명을 탈출시켰으며, 그중 미국인은 6000명이라고 백악관은 전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프간이 탈레반에게 조기 함락되면서 미국 외교에 중대한 숙제를 남겼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구출했지만, 많은 이가 아직도 그곳에 있다”면서 “그들에 대한 약속은 마감 시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군사적 임무는 끝났지만 새로운 외교적 임무가 시작됐다"면서 "우리 군이 아프간을 떠나면서 미국의 아프간 관여에 관한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인과 적법 절차를 밟은 아프간인이 원할 경우 언제든지 출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탈레반의 약속을 상기했다.

미국인 100여명, 아프간인 10만 명 남기고 떠나

미국은 카불대사관을 완전히 철수하고 인근 카타르 도하에 영사 기능을 둬 출국하려는 아프간인들에게 서류 발급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탈출을 원하지만 빠져나오지 못한 미국인 수는 100여 명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을 위해 일해 탈레반의 표적이 될 수 있으나 아프간을 아직 떠나지 못한 아프간인 수는 언급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10만 명으로 추산했다.

결국 탈레반이 약속한 외국인과 아프간인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여성·어린이 등 기본적 인권 수호 등이 얼마나 잘 지켜지느냐에 바이든의 실패한 철군 정책에 대한 평가가 달린 셈이다.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테러 대응 활동을 강화하고, 철군 과정에서 이견을 드러낸 나토 동맹과 관계 회복도 필요하다.

아프간인들이 31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부 기지에 내렸다.[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간인들이 31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부 기지에 내렸다.[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의 정권 장악 후 카불공항의 혼란상과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폭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진 데 대해 강한 비판을 받았다.

바이든은 일단 안전한 대피가 최우선이라며 정책 실패 검토는 8월 31일 이후로 미뤄왔는데, 조만간 의회와 야당, 언론이 실패 원인 파악에 들어갈 전망이다.

전쟁 종지부는 성과 vs 사이공 순간은 실패 

비록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시점을 오판해 혼돈과 유혈의 퇴각을 했지만, 부시와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까지 모두 4명의 대통령을 거친 20년 전쟁에 바이든이 어쨌거나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이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하지만 수만 명에 이르는 아프간 조력자들을 남겨두고 철수하고, 남베트남 패망 때처럼 대사관 헬기 탈출로 '사이공의 순간'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은 바이든의 약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지낸 벤 로즈는 WP에 바이든 행정부의 시급한 문제 두 가지로 아프간 난민 수용으로 촉발될 수 있는 이민 문제와 아프간이 테러리스트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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