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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미군 철수 시한 지켜야"…북부엔 저항세력 진압군 급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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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미군들이 카불 공항 인근 도로의 철조망 너머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뉴스1]

20일 (현지시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뒤 미군들이 카불 공항 인근 도로의 철조망 너머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뉴스1]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달 31일로 예정된 미군과 영국군의 철수 마감 기한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간 거주 미국인의 탈출을 위해 예정된 철군 시한을 늦출 수도 있다고 공언한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23일 카타드 도하에서 진행된 영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8월 31일 철수 기한은 '레드라인'"이라며 "이를 어길 경우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그들이 철군 시한을 연장한다는 것은 임무를 연장한다는 의미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면서 "만약 그들이 주둔을 계속한다면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레반 측의 '철군 시한 엄수 요청'은 카불 공항 혼잡 사태로 미국 측의 자국민 공수 작전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인명 피해도 계속되고 있다. 23일 독일군은 트위터를 통해 “오늘 오전 4시13분 카불 공항 북쪽 게이트에서 아프간 보안군들과 괴한들이 총격전을 벌여 보안군 한 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며 “미군과 독일군도 총격전에 참전했지만, 다행히 모든 연방군 대원들은 무사하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나토군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7일 동안 공항 혼잡 사태로 사망한 사람이 최소 20명이라고 전했다.

반(反)탈레반 주요 무장 저항세력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32, 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반(反)탈레반 주요 무장 저항세력 지도자 아흐마드 마수드(32, 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내 저항세력과 탈레반 간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22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판지시르 계곡에 모인 저항군을 섬멸하기 위해 진압군을 급파했다. 이날 탈레반도 자체 트위터를 통해 “몇몇 지역 지도자들이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거부하고 있다”며 “우리 수백 명의 이슬람 전사가 사태 해결을 위해 판지시르로 향했다”고 밝혔다.

앞서 탈레반에 대항하는 정부군과 지역 민병대 등으로 구성된 저항 전선은 북부 판지시르와 파르완·바글란 등 3개 주(州)를 거점으로 결사항전을 예고했다. 이들은 소련과 탈레반에 맞서 반군을 이끌었던 ‘아프간 국부’ 아흐마드 샤 마수드(1953~2001)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 주니어(32)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마수드는 23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알아라비야 방송 인터뷰를 통해 “탈레반이 현재 노선을 고수한다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서 “탈레반에 포괄적 정부 구성을 요구한다. 우린 탈레반이 협상만이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탈레반이 포괄 정부 구성을 거부할 경우 전쟁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탈레반은 진압군 파병으로 대응했다. 이날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기존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과) 수도 카불에서 회동을 통해 논의가 진척되고 있다”며 “새 정부 출범을 곧 선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마수드를 포함한 저항 전선 대표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탈환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간부 아나스 하카니(가운데 오른쪽)가 18일(현지시간) 카불에서 하미드 카르자이(가운데 왼쪽) 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오른쪽 두 번째)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등 아프간 전 정부 측 인사들과 회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탈환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간부 아나스 하카니(가운데 오른쪽)가 18일(현지시간) 카불에서 하미드 카르자이(가운데 왼쪽) 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오른쪽 두 번째)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 등 아프간 전 정부 측 인사들과 회동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탈레반의 대외 홍보 창구인 문화위원회 소속 간부인 압둘 카하르 발키는 2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미래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며 “이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The 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의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에미리트는 탈레반의 과거 아프간 집권 당시(1996∼2001년) 국호다.

탈레반의 문화위원회(Cultural Commission) 소속 간부인 압둘 카하르 발키. [압둘 카하르 발키 제공=연합뉴스]

탈레반의 문화위원회(Cultural Commission) 소속 간부인 압둘 카하르 발키. [압둘 카하르 발키 제공=연합뉴스]

그는 또 “아프간에는 리튬 등 손대지 않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며 “한국은 전자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로 아프간과 함께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해 나갈 수 있다”고 경제 교류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이어 지난 2007년 아프간에 주둔 중이었던 고(故) 윤장호 하사를 폭탄 테러로 숨지게 한 사건 및 같은 해 분당 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을 납치했다가 이 가운데 2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선 “자결권에 따라 우리 권리를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며 사과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이제 과거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를 바라봐야 하는 게 시급한 문제”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내부 정세변화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며 탈레반 새 정부 구성과 국제사회 동향 등을 지켜보고 결정을 내리겠다는 계획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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