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연의 세계 일주] 故 '멍멍이님'을 기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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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여행 중의 일이다. 민박집 주인으로 변신한 친구 아버님이 들려주신 이야기 한 토막.

넓은 호주에 이민 와서, 맑은 공기에 마당 너른 집에 사는 것은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나, 한 가지 흠이라면 도무지 멍멍탕을 구경할 수 없다는 것.

동물 애호단체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이곳 호주에서는 멍멍탕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이야기다.

오죽하면 그 지위가 '어린이 & 노인 > 여자 > 애완동물 > 남자'순이라는 우스개가 나오겠는가.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 우리 아버님. 이만한 장애에 굴하겠는가?

'멍멍탕을 팔지 않는다고? 좋아! 내가 직접 만들어 먹으리!'

같은 고통에 시달리는 몇몇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계획, 뒷마당에서 몰래 개를 잡다가 옆집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호주에서는 동물을 고의로 학대하거나 살해(?)할 경우 적게는 벌금형, 크게는 옥살이를 감수해야 한다.

'어이쿠, 이제 꼼짝없이 감옥행이구나.' 눈앞이 캄캄해진 그 때, 한가지 아이디어가 반짝 떠올랐다.

"개를 먹다니요? 사랑하는 우리 워리를 직접 화장시키고 제사를 지내던 중이었는데요."

'제사'를 지낸다고 했으니, 바비큐 화덕 주위로 늘어놓은 안주거리며, 뒹구는 술병들이 설명이 됐다.

몰래 개를 잡수려는(!) 범법자들을 검거하러 왔던 경찰 아저씨는 그야말로 감동의 물결.

이리하여 철창 신세를 면한 것은 물론, '개를 사랑하는 한국인' 이라는 제목으로 지역 신문에 실리는 영광 아닌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으니.

경찰 아저씨가 증거 삼아 찍은 '가짜 제삿상'과 '불쌍한 워리', 그리고 그 옆에서 어정쩡하게 웃고 있는 동지들 사진 말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섹시스타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을 '개를 먹는 무식하고 야만적인 나라'로 몰아세웠다. 이에 '문화적인 차이일 뿐'이라며 반박한 김홍신 의원의 보신탕 논쟁이 새삼스럽다.

현재 호주에서는 캥거루 고기 논쟁이 한창이다.

천적이 없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캥거루는 배당받은 머리수만큼 사냥하고 다니는 직업 공무원이 있을 만큼 호주의 골칫거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내놓은 것이 캥거루 고기 마케팅.

브리지트 바르도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닌 모양이어서, 개고기를 먹는 우리보다 한술 더 떠, 어여쁜 캥거루 고기를 국가적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유통시켜 소비를 장려하는 호주로도 비난의 화살 퍼붓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캥거루 고기를 버젓이 유통시키며 시드니 올림픽을 치러낸 호주 국민들.

개고기나 캥거루 고기를 꼭 먹어야만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니겠는가?

조정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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