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승인 수락의 조짐인가/북의 대일 수교제의에 주목할 점(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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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이 일본에 대해 수교제의를 했다는 보도는 한반도 분단 고착화를 위한 음모라며 평양측이 극렬히 반대해온 교차승인방안으로 급선회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서 환영할 만한 변화다.
북한의 이러한 정책결정은 우선 두가지 뜻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그동안 우리가 북방정책의 목표로서 추구해온 미ㆍ일ㆍ중ㆍ소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이 현실화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북한이 그 체제를 떠받쳐오던 「하나의 조선」이라는 기본논리를 수정하는 길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남북한 교차승인은 한반도에 「두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결과를 가져와 분단을 고착화하는 방안이라고 비난해왔었다.
북한의 이러한 선택은 따라서 갑작스러운 변화라는 데서 우리에게 당장 충격적이지만 통일의 단계로서 바람직하게 기대해왔던 것인만큼 우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다.
북한이 일본과 수교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우리가 북방외교를 추진하며 밝혀온 북한의 국제사회 참여,이를 통한 대외개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뜻한다.
이와같은 전망을 놓고 우리는 정부가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과 남북한 관계에 있을 수 있는 여러가지 외교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다시한번 점검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자신있는 정책을 펴나가기를 당부한다.
우선 정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이번 사태의 줄거리를 우리가 북방정책에 걸었던 궁극적 기대가 드디어 눈앞에 다가왔다는 평가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일ㆍ북한의 수교는 앞으로 미ㆍ북한의 접근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은 궁지에 몰리고 있는 북한을 남북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되도록 정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런 본질 파악을 바탕으로 해서 정부는 일ㆍ북한 수교가 남북한 관계개선에 장애가 될 요인들을 찾아내 일본에 요구할 것은 해야 될 것이다.
첫째,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이 북한의 핵개발 문제라든가,테러행위 규탄성명과 같은 문제를 소홀히 넘기고 수교에만 정신이 팔려서는 안된다고 본다.
둘째,우리가 추진중인 남북 정치ㆍ경제협력 노력에 북한이 응해올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동기를 일본의 성급한 경제협조로 선점해버린다면 그것은 남북한 관계를 다시 고착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앞으로 주목할 점은 북한의 이번 선택을 기점으로 남북대화 자세가 종전보다 훨씬 현실적이고도 생산적인 자세로 변할 수 있게 되느냐는 여부다.
당분간 대내적인 명분상 하나의 조선이라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를 수정하는 바탕에서 남북대화를 진행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일본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받아들이게 될 자본과 기술은 종국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숨결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는 북한 사회의 대외개방을 뜻하는 것이다. 대외개방은 필연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예상 외로 빠른 북한ㆍ일본 접근에 대해 당혹감을 가질 것이 아니라 북한이 더욱 빨리 외교관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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