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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화해무드 갈수록 "시들"|열기 더하는 북경 아시안게임 취재기자 방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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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죽의 장막을 걷는「신비의 나라」중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국제행사라는 점만으로도 북경아시안게임은 과거 어느 대회보다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거기에다 남북한과 중국·대만의 선수단이 동참, 이 대회는 이제 겨우 개막초반인데도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현장을 뛰고 있는 중앙일보-중앙경제신문 특별취재단원들은 25일 오랜만에 한자리에 다 모여 방 담으로 북경 아시아드 벽두의 격동하는 여러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편집자 주>
-열전 16일에 돌입한 제11회 베이징(북경)아시아드는 초반부터 예상대로 중국의 독주, 일본의 고전, 따라서(?)한국의 종합준우승이 낙관되는 수순을 밟아 가고 있습니다.

<중 독주로 일 타격>
중국이 여자역도·수영·체조·사격 등 강세종목에서 엄청난 황색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한국·일본·북한 등 다른 나라들은 이미 들러리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한국선수단도 사이클에서 차질을 빚어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으나 뜻하지 않은 여자펜싱에서 금메달이 나와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답니다.
-본부선수단은 물론 펜싱임원들도 예상을 못했답니다.
-그래서 응원단이 한 명도 없어 금메달 주인공 탁정임 선수는 동료들로부터 축하악수를 받는데 그쳤어요.
-사실 취재기자들도 같은 시간에 열린 한-일 배구, 남-북 농구 쪽으로 몰렸지요.
-좌우지간 연일 밤낮으로 취재보도에 고생이 너무 많지요.
-우선 중국인 특유의 만만치(만만디)한 성격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취재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기자들은 남-북한 관계 등 경기외적인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촉각을 세우느라 잠잘 틈이 없었어요.
그건 그렇고, 중국의 독주는 예상했었지만 너무한 것 아닙니까. 수영에서 일본 아성을 완전 붕괴시키고 금 노다지를 캐는데 이런 추세라면 당초예상보다 20여 개가 많은 1백70개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요.
-반면 일본은 이러다간 50여 개는 커녕 40개정도로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일본기자들은 우려하더군요.
그렇다면 한국의 종합 2위 전망은 한층 밝아지는 거지요. 금메달 65개로 86년 서울대회에 이어「2위 2연패」(?)가 확실시된다는 선수단의 분석입니다.
북한은 고작 금20개 내외라는 게 여기 와서 더 확연해지는 느낌이지요.

<"평생 한 풀었다">
-우리측 고위관계자가 대회조직위 측에 대해「중국이 1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우슈·소프트볼·세팍타크로·여자역도 등을 무리하게 끼워 넣을 필요가 있었느냐」고 핀잔을 주자 아예 대꾸조차 하지 않고 딴전을 피우더라고 전하더군요.
-그렇지만 이 같은 취재전쟁 (?) 속에서도 본사 특별취재단이 성사시킨 북한 이병문 체조심판과 한국 내 형제들과의 전화통화는 보람도 있는 데다 타사들을 그로기로 만든 특종이었습니다.
-특히 북한취재진의 관심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어요. 그네들도 감쪽같이 우리 취재단에 특종을 뺏겨 발을 동동 굴렀지요.
-취재를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본사 MPC사무실과 숙소에는 북측기자들로부터 매일 수십 통씩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중앙일보가 큰일을 해낸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앞으로 북경에서 이씨 가족이 상봉 할 수 있겠느냐』『상봉이 성사되면 사전에 미리 알려줘 같이 보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요.
-길림성의 한 조선족신문사 기자는『이산의 한을 품고 사는 해외교포들은 이씨 가족의 상봉소식에 함께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 하고 있다』며 보다 상세한 취재내용을 전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씨 자신은『그리운 형제들의 음성을 듣고 소식을 듣게 돼 평생의 한을 풀었다』며『이제 서로의 생존사실과 사는 곳의 주소까지 알았으니 하루빨리 통일이 이뤄져 직접 만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심정을 피력하더군요.
-그전에라도 이씨 가족의 상봉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21일 한국 기자단 예방 차 프레스센터에 들른 고건 서울시장은 혼자 기자실에 들러 이씨의 소식을 물으며 이들이 북경에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며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북측 기자들도 우리기자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느 대회에서 만난 것보다도 유연한 태도이더군요.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자는 사무실까지 방문, 북한 담배 등 선물까지 놓고 갔어요.
-이번 대회 최대의 관심사는 우리는 한 핏줄임을 확인한 남북한 사람들의 접촉이에요.
-이번 대회에 참가중인 북한 선수단은 물론 관광객들마저도 상당한 「사전교육」을 받고 온 것 같아요. 지금까지 폐쇄적이고 어색하기까지 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식당이나 경기장 등 만나는 곳마다 먼저 말을 걸어오고 통일문제를 거론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었습니다.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다만 말을 시작했다 하면「조국통일」운운해 천편일률적인 말을 되풀이하는 게 귀에 거슬립니다. 물론 통일이야 지상과제지만 아무 데나 꿰 붙이는 것 같아 대화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23일부터 시작된 남북공동응원은 이곳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양측의 경쟁적 응원과 배타적인 태도만을 경험한 많은 외국기자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 이라며 사뭇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측의 경기가 있는 경기장마다 우리관광객들이 묘를 못 구해 야단입니다. 북한측에서 표를 싹쓸이해 간다는 겁니다.
글자 그대로 공동응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정치선전을 위한 장으로 경기장을 호 도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남북합동응원 쪽으로 화제를 돌려볼까요. 아직은 남북한합동응원은 기대하기가 힘든 분위기예요. 남과 북이 격돌하는 남북대결의 무대마다 남북이 한데 어울러 합동응원을 펼치는게 무리라는 생각을 솔직히 떨쳐 버릴 수가 없더군요.
한국이 먼저 『통일의 노래』를 부르면 북한은 『도라지타령』 을 부르고 한국이 『코리아 파이팅』을 연호 하면 북한은 징이나 꽹과리를 동원, 이를 희석시키곤 해요. 결과는 좀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비관적이에요.

<식당 종업원 급조>
-이번 북경대회에서 북한의 의중이 잘 집약된 곳 중의 하나가 유경 식당 일 겁니다. 평양과 북경 측이 합작, 지난 22일 문을 열고 전 종업원을 평양에서 데리고 온 이 한 식당에는 북한측보다 한국 측 임원·선수·취재단의 이용도가 훨씬 빈번하였습니다. 24일부터는 평양에서 온 6인조 여성밴드까지 동원,『우리의 소원은 통일』『고향의 봄』등과 템포가 빠른 곡들까지 신명나게 연주하고 있어요.
그러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잘 차려입은 미인들과 어린이·젊은 남녀들이 고정고객으로 배치되어 있는데다가 차림표의 내용도 잘 모르는 종업원 등으로 이 식당은 마치「급조된 무대」와 같았습니다.
특히 한국 측의 한 손님이 반주에 맞춰『고향의 봄』을 부른 뒤 유행가를 신청하자 종업원과 고정 손님들이 일제히 뛰어나와『이곳은 그런 곳이 아니오』라고 외쳐 대 이식당의 성격을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장관회담 "냉랭">
-남-북 축구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체육부는 크게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당초 지난 7월말 이곳에서 열린 다이너스티컵 국제축구대회에서 김용균 차관이 북한의 강득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만나 남-북 축구와 서울∼평양간 사이클 및 역전경기대회를 제안했고, 강 부위원장이 추후 결정사실을 통보해 주겠다고 한 것이 합의된 것으로 와전된 것인데 청와대측 발표로는 남북축구대회에 대한 통보를 받은 것으로 돼 있어 체육부로서는 어떤 경로를 통해 그 같은 일이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기자들 사이에도 체육부만 불쌍하게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3일 남북체육장관회담이 열리자마자 김유순 위원장 등 북측대표들은 남-북 축구대회 개최를 한국 측이 성급하게 발표한 것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성토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날 남북공동응원제를 합의할 때만 해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장관회담에서는 완전히 반전돼 남한측 대표들이 진땀을 흘리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청와대의 사전발표로 국민적 기대감을 다소라도 충족시키려 했던 체육부 쪽은 남-북 축구대회개최성사는 접어 두고라도 회담자체를 성사시키기 위해 북측에 끈질기게 요구하는 모습은 차라리 측은할 정도였어요.
-한국 정부지원단내에서는 이곳을 방문중인 우리측 VIP들이 지나칠 만큼 남북관계를 낙관적으로 보고 덤비는데 대해 불만이 고조되고 있어요.
남북한간의 남북축구가 무산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모 장관은 정부지원 단 사무실에 들러 10월중 남북축구 교환경기가 열릴 테니 평양에 갈 준비를 하라고 떵떵거려 관계자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습니다.
사전준비 차 미리 들어와 있는 정부 지원 단은 VIP들이 현지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서로「한건」해보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어 오히려 체육분야에 있어 남-북 대화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불평이 대단합니다.
-우리측과 마찬가지로 북한측도 처음에는 각종 남북한간의 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한국 언론들이 너무 앞서 추측보도를 한다』는 등 신경질적인 반응이 많아졌습니다.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도 좋더군요.
지난 19일 밤 대만 측의 초청으로 이뤄진 북경호텔의 모임은 우리가 보기에도 흐뭇한 장면이었습니다. 우리 남북한도 그같은 자리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중·대만 화기애애>
-기자들의 사이는 더 좋은 것 같아요. 대만에서 온 기자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우선 중국기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중국기자들은 성심성의 껏 도와주더군요.
-중국당국이 이번 대회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는 선수촌·기자 촌 및 각종 경기장시설과 안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자원봉사자들의 근무자세입니다. 이들은 북경외국어대학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중국의 자존심을 대변하듯 일체의 팁을 정중히 사양하고 있어요.
-팁은커녕 볼펜 등 기념품조차 받으려 들지 않아요.
-MPC측에서 중앙일보에는 최대의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로부터 매일 각 신문들의 내용을 받아 보고 있는 MPC당국은 중앙일보의 내용이 가장 정확하다는 평을 내리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소문이 나자 북한이나 일본기자들이 우리 사무실에 자주 들러『뭔가 없느냐』는 취재를 해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대회와 우리의 전쟁(?)은 이제부터입니다. 계속 분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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