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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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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아일랜드는 최근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주목받는 나라다. 지난 10여 년간 경제 개혁의 결과 한달음에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 국내에서도 '아일랜드를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다.

아일랜드는 우리와 닮은꼴 나라이기도 하다. 지정학적 위치, 강한 민족주의, 정서와 기질 등이 닮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인은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으로 불릴 만큼 술.음악.춤을 좋아한다"고 보도했다.

서울대 박지향 교수도 '슬픈 아일랜드'에서 "맹목적 애국심, 자신들의 역사가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 실제로 강대국 옆에서 겪은 수난 등 두 나라 간에는 역사적.정서적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고 썼다. 이런 아일랜드의 슬픔이 예술.문학의 거장들을 배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예이츠,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사뮈엘 베케트는 아일랜드 문학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U2와 시너드 오코너 등 뮤지션도 많다. 순박한 아일랜드인 이미지의 원형을 만든 영화 '아일랜드 연풍'의 감독(존 포드)과 배우(존 웨인)도 아일랜드 출신이다. 영화 쪽에서는 1990년대 들어 아일랜드 감독들이 북아일랜드 사태,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를 소재 삼아 역사의 비극성을 환기시켰다. '아버지의 이름으로''마이클 콜린스''피의 일요일'같은 영화들이다.

올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도 IRA 영화다. 20년대 아일랜드 독립투쟁에 뛰어든 형제가 반목하다가 서로 총부리를 겨누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감독은 '현존하는 최고의 좌파 감독'답게 조국인 영국의 제국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동시에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야만의 현장도 직시한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좌파인 동생 데이미언의 대사. "무엇을 반대하기는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그는 밀고자인 동네 청년을 사살하면서 "조국이란 게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라고 자문한다. 그리고 그 역시 희생돼 간다. 실용과 신념의 괴리 속에서, 조국과 민족의 이름으로 많은 것들이 행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각별한 울림을 주는 영화다.

덧붙여 '슬픈 아일랜드'는 최근 아일랜드 학계가 '세계에서 가장 슬픈 나라'라는 감정적 신화와 협소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스스로 역사를 객관화하려는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이 또한 아일랜드에서 배워야 할 것이 아닐까.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