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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에 덤터기 씌운 “팽창”/문제많은 「제2차 추경예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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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페만 분담금도 예비비에 포함/잘못 쓴 석유기금 5천억원까지 반영
정부와 민자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조기처리키로 한 2조8천억 규모의 제2차 추경예산은 당초의 2조원 수준에다 긴급지원해야 한다는 수해복구비 2천억∼3천억원을 제외하더라도 무려 5천억∼6천억원 이상 대폭 증액된 것으로 「팽창 추경안」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팽창증액분 중에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해왔던 페르시아만 주둔군 등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이 최저 3백50억원(5천만달러)과 최고 7백억원(1천만달러) 사이에서 「예비비」 명목으로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데다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해온 석유사업기금을 결국 추경까지 해가며 땜질하는 식이 돼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
당정은 예기치 못했던 수해대책 지원을 핑계로 평민당 등 야당이 들어오지 않은 사이에 내막적으로는 말썽의 소지가 있는 예산 등을 수해대책에 어물쩍 묻어 넘기려는 속셈이 역연해 논란의 소지가 많다.
그러면서 이번 추경안은 광주보상금중 정부지원분을 반영함으로써 평민당의 부담을 덜어 원내복귀를 꾀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페만 미 주둔군 비용분담문제는 그 자체가 우리 외교사상 거의 없던 일인 데다 이라크 등 중동지역과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대단히 민감하고 국익차원에서 고도의 보안이 요청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어서 추경에 포함됐는지 여부에 대해 언급을 않겠다는 태도다.
당초 이 비용을 일반 본예산으로 계상할 것인지,추경예산으로 처리할 것인지,세목을 원래의 목적에 합당한 이름으로 할 것인지,예비비 혹은 특수예비비로 할 것인지 등에 대한 고심에 찬 검토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결국 노태우대통령의 지시로 부담금 규모 등을 검토한 이승윤부총리는 이번 추경안에 「예비비」 명목으로 반영키로 결정했다.
15일 이 부총리ㆍ정영의재무장관과 민자당 김용환정책위의장ㆍ김용태예결위원장 등이 모인 추경 당정회의에서 이 부총리는 『미측의 1억달러 요구에 대해 우리는 수해대책비 증가로 5천만달러 제공안을 갖고 미국과 협상중』이라고 밝혔다는 것.
김용환의장은 페만 주둔비의 추경산입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에 관한 일체의 논의가 없었다』고 부인하고 『모르는 사항이지만 알더라도 국익을 위해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추경안의 확대편성된 증액분 8천억원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4천억∼5천억원 규모의 석유가 안정기금 추가지출 몫.
지난달 하순 수해피해전에 정부가 마련한 제2추경 규모는 ▲정부 보유 국민주 매각보류에 따른 세입차질 1조7백억원 ▲지난해 추곡수매에 앞당겨 써버린 금년도 양곡관리기금 결손분 4천6백억원 ▲페만사태에 따른 석유사업기금 미조성분 4천6백억원 등 2조원 규모였다.
그로부터 20여일 밖에 안 지난 시점에서 또다시 유가안정기금이 추가소요된다며 5천억원의 석유사업기금 보전자금을 편성했다.
당초 정부측은 올해 석유사업기금에서 재특에 1조원 정도 끌어다 쓰려다가 중동사태로 석유값이 오르자 5천4백억원 밖에 가져오지 못했다.
그 바람에 펑크가 나게 된 4천6백억원을 추경에서 지원하겠다는 게 원래의 2차 추경안이었다.
그러나 석유사업기금쪽에서 석유값을 올리지 않기 위해서는 석유값 완충자금(1조6천억원)중에서 정부가 재특으로 꾸어간 1조2천억원을 내놓으라고 하자 다시 5천억원을 반영하게 된 것이다.
정부측은 4천억∼5천억원의 유가안정을 위한 추가소요 발생분은 재정투융자 특별회게(재특)에 빌려준 것이므로 다시 돌려 받아 메울 것이기 때문에 『전혀 국민에게 추가 세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라고 하더라도 결국 재특이 석유사업기금에 갚아야 할 4천억∼5천억원을 정부가 예산으로 메워주는건 변함이 없다.
정부는 연말까지 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세계잉여금으로 처리할 수는 있지만 정부측이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해온 석유사업기금 등 특별회계 운영의 허점을 드러낸 꼴이 됐다. 실제 석유사업기금 5조5천억원중 석유비축사업에 투자된 것은 1조원뿐이고 2조원 정도는 해외자원 개발 등의 장기정책 자금으로 함부로 끌어다 써버렸고 나머지는 정부가 재특에 이용하다가 결국 펑크를 냈다.
○…수해복구비는 추경에 새로 배정한 3천5백억원에다 올해 예산의 재해대책예비비 3천2백억원을 포함,6천7백억원을 상회하게 돼 이번 홍수피해 추정치 4천여억원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다는 게 정부측 계산이다.
민자당은 2차 추경이 수해지원 등 긴급한 민생현안적 성격과 논쟁거리가 많은 특성 때문에 이를 심의키 위해 평민당의 원내복귀를 촉구하곤 있지만 내심은 반드시 그렇지도 않는 듯한 인상이다.
김용환의장이 『추경심의를 위해 평민당이 국회에 들어오길 바란다』고 말했으나 『10월초까지는 평민당이 없어도 민자당만의 단독 심의가 불가피하다』고 흘리는 것은 이번 추경내용의 문제점 등으로 미뤄볼 때 단순히 평민당의 유인책략만이 아니지 않느냐는 추측이 더 강하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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