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노점상 '폭풍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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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다, 싸. 온돌방보다 더 따뜻한 점퍼 5천냥~."

기온이 뚝 떨어진 29일 서울 청계천 8가 황학동 벼룩시장 앞. '단결.투쟁' '생존권 사수'라는 노란 글자가 새겨진 검은색 조끼를 입은 노점상 朴모(43)씨가 보도에 옷가지를 쌓아놓고 목이 터져라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朴씨의 외침은 바로 앞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의 대형 절단기 굉음에 힘없이 사그라졌다.

"에이, ××놈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죽겠는데 무슨 얼어죽을 청계천…." 朴씨가 씩씩거리자 같은 조끼를 입은 노점상들도 "우리 생계 터전인 보도를 뒤엎는 날 서울시도 끝장"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청계천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넉달째 청계천 복원공사를 진행 중인 서울시가 11월 중순부터 1천여 노점상들이 몰려 있는 청계 3~9가 2공구 구간의 보도 축소 공사를 강행할 예정이어서 노점상들이 육탄 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레코드판.생활용품.의류.헌책.가전제품.공구에서 만병통치약(?)까지 '없는 게 없다'는 황학동 벼룩시장과 평화.신평화 시장에는 '흩어지면 죽는다. 단결만이 살 길이다' '똘똘 뭉쳐 생존권 사수하자'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서울시는 벼룩시장.평화시장.신평화시장 일대 보도 폭을 현재의 5~7m에서 3m로 절반을 줄여 청계천 우수관을 묻는 보도정비 공사를 하고 줄어든 보도 폭에는 임시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다. 결국 좌판을 펼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어서 노점상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노점상들은 다음달 5일 투쟁기금을 마련하는 하루 장터를 연 뒤 몸으로 공사를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다질 계획이다. 이들은 ▶노점 공간 확보 보장▶1인당 1천만~3천만원 보상금 지급▶풍물거리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달째 천막투쟁 중인 노점상 조창희(47)비상대책위원장은 "청계천 복원의 최대 피해자는 노점상들"이라며 "더 이상 망가질 인생도 없고 엄동설한에 굶어죽을 수도 없어 끝까지 버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노점 영업은 불법이기 때문에 한푼도 보상해 줄 수 없다"며 "청계천이 복원되면 노점상과 주변 환경이 어울리지 않으므로 어차피 노점상들은 모두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청계천에는 6만여 상가에 21만여명이 일하고 있으며 노점상은 1천2백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양영유 기자<yangyy@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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