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입 주방용품 부엌 잠식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리 가정의 부엌에까지 외래상품이 파고 들어와 넘치고 있다. 수입개방화 물결을 타고 상륙한 수입 주방용 기구와 외제식품들이 부엌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 우리의「부엌문화」를 지배해 전면 수입개방압력을 앞두고 우려의 소리가 높다.
프랑스 제 비존 냄비, 실버스톤 프라이팬, 독일제 타파웨어, 이탈리아산 세믹싱볼, 일제 도시락 찬 통과 전골냄비, 미국산 레인지 용 찜기, 필리핀 산 컵 받침 등등…. 서울시내 유명백화점들이 판촉용으로 판매대에 써 붙인 품목들이다. 이같은 수입품들이 최근 들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손님접대용으로 코피 잔이나 접시 류 한 세트 정도를 예쁘고 고급스런 외제로 구입해 두던 것이 요즘 와선 보통이 될 정도로 주방용기의 외제바람이 불고 있다.
소금·후추·간장 등을 담아 두는 양념 통 세트·밥공기·식칼·김치 통·갖가지 모양의 냄비·식탁보·숟가락·젓가락·티스푼·압력솥·도시락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밥주걱·수세 미·도마·쓰레기통, 심지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냉장고용 물통·바구니·바가지까지 어림잡아 1백여 가지가 넘는 수입 주방용 기구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외제바람은 비단 주방용 기구 뿐 아니라 우리들이 매일 먹는 음식에도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우리음식의 대명사격인 재래식된장·고추장대신에 일게 된장만을 먹는 가정도 부쩍 늘고 있다. 어린이들이 외제주스나 과자·초컬릿 등을 수입식품상가나 백화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사 먹고 있다.
이같이 부엌의 외제바람이 특히 거세게 불기 시작한 것은 최근 1∼2년 사이. 수입자유화이후 미국·일본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물론이며 태국·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우리나라와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들의 물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동구권교류의 물결을 타고 체코·헝가리제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일부 백화점과 수입상들, 외제면 무조건 좋아하는 일부 소비자들의 선호가 삼박자를 맞춰 이같은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수입 주방용기구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세련된 감각의 색채와 모양, 사용상의 편리함, 내구성, 여기다 국산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 등이 주요 요인. 서울 서초동에서 수입품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순영씨는『수입식품은 맛이 색다르고 유해첨가물이 적어 안전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즐겨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했다.
강남의 N백화점에서 수입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김은영 양은『지금까지 외제를 판매하는데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는 소비자는 한 명도 본적이 없다』며 오히려 외제라 하면 슬며시 놓았던 물건도 다시 살펴보고 사가는 구매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1천 원 짜리 수세미, 몇천 원 짜리 김치 통 등을 주로 판매하는 김 양의 하루 판매액은 약50만∼1백 만원에 이르고 있다.
이에 대해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회장은『우리 물건이 기능이나 색상 면에서 미제·일제에 비해 다소 질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우루과이라운드 등 선진제국의 전면 수입개방압력을 앞두고 국민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이제 우리 경제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문경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