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가 마카오 소재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400만 달러를 조사한 결과 800만 달러는 합법적인 돈으로 확인됐다고 들었다. 미국은 6자회담 재개 이전에 이 돈을 풀어 평양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
돈 오버도퍼(75) 미국 존스홉킨스대 부설 한.미 연구소장은 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이 6자회담 재개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반면 한국은 이렇다 할 일을 하지 못했다. 북한이 그걸(한국의 개입) 원치 않은 게 한가지 이유"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미.중 3국이 거의 1년 만에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는데.
"일단 긍정적인 진전이다. 그러나 충분치는 않다. 북한과 미국은 지난해 9.19 베이징 공동성명 당시 고집했던 각자의 입장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나 회담에 임해야 한다. 지난해 북한은 공동성명 채택 다음날 경수로부터 지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도 북한이 모든 핵을 폐기해야 (경수로 문제를)생각해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현격한 입장차 때문에 회담은 1년간 공전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입장은 구체적으로 어때야 하나.
"북한의 최대 관심사인 금융 제재를 완화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10월 초 미 재무부 관리들을 만났을 때 BDA에 동결된 북한 자금 2400만 달러 중 합법 자금과 비합법 자금을 구분하는 조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최소한 800만 달러는 문제 없는 자금으로 분류됐다고 했다. 이 중 600만 달러는 평양에 있는 북한 유일의 외국계 합작은행인 대동신용은행의 자금이고 나머지 200만 달러는 북한에 담배를 팔아온 브리티시아메리칸코바코의 자금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6자회담 재개 전에 이 800만 달러를 푼다면 평양에 '잘해 보자'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미 재무부가 '합법 자금'을 실제로 풀어줄 가능성이 있나.
"내부 소식통에 확인한 것인데, 일부 합법적인 돈을 풀 때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재무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른다. 그러나 돈세탁이나 위폐와 관련된 자금을 제외한 합법적인 돈은 회담 전에 풀어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법 조치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미국의 원칙과도 배치되지 않는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는 어떻게 되나.
"안보리 결의에 따른 제재는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자금이나 부품.기술 이전이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 문제가 회담 재개에 걸림돌이 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6자회담 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산 정상이 올라갈 목표라면 우리는 이제 겨우 산기슭에 도착했을 뿐이다."
-정상회담차 9월에 워싱턴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는데.
"당시 노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대북 정책을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북한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한국이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 북한 핵실험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표피적(superficial)인 수준이다."
워싱턴=이상일.강찬호 특파원
◆ 돈 오버도퍼=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의 한반도 전문가. 육군 중위로 주한미군(1953~55년)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현재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에 신설된 한.미연구소(USKI) 소장 직을 맡고 있다. 워싱턴 정가의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제시하고 있다. 저서로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 등이 있다.
◆ 방코델타아시아 (Banco Delta Asia)=1935년 설립된 마카오의 소규모 은행이다. 마카오 정치협상회의 위원이자 금융계의 큰손인 스탠리 오우(區宗杰) 델타아시아그룹 회장이 대주주다. 지난 20년간 북한 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 재무부는 지난해 9월 이 은행이 북한의 불법 행위와 관련된 자금을 취급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 금융 당국으로 하여금 북한 관련 계좌를 동결하도록 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