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들의 집값 누구집이 가장 비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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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집.

이코노미스트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다. 한때 대지면적 6만 평이 넘는 대한민국 ‘최고의 집’ 청와대에서 거주하던 전직 대통령들은 지금 어디서, 얼마짜리 집에 살고 있을까? 신군부에 의해 8개월만에 사임한 역대 최단명 대통령이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지난 10월 22일 별세한 후 생전의 검소한 생활이 회자되고 있다.

그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2층 양옥집에서 2003년까지 연탄 보일러를 때고 살았다는 것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전직 대통령들이 요즘 사는 집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이코노미스트가 고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이 사는 집을 현장취재했다.


전직 대통령들이 퇴임 후 살게 되는 사택의 규모는 그들이 누린 권력의 크기와 연관이 있을까?

전직 대통령들의 집 중 시세가 가장 높은 곳은 동교동에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이었다. 이 집은 2002년 김 전 대통령의 퇴임 직전 증개축됐는데 현재 시가론 19억3000만원 선이다. 이어 전두환(15억2000만원), 최규하(9억5000만원), 노태우(8억2000만원), 김영삼(7억5000만원) 전직 대통령 순이다. 대지면적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818.9㎡)이 가장 컸고, 이어 김대중(573.6㎡), 노태우 (437.4㎡), 김영삼(377㎡), 최규하(359.7㎡) 순으로 고 최규하 전 대통령 집이 가장 작았다.

김대중·전두환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전직 대통령은 모두 본인 명의로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은 소유자가 각각 부인인 이희호, 이순자 여사 앞으로 돼 있다.
최근 작고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집은 마포구 서교동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대지면적은 108평이고 1층 43평, 2층이 28평, 지하실 28평으로 집 연면적은 총 99평이다.

이 지역의 평당 가격은 1200만원 선으로 인근 동교동과 함께 부촌에 속한다. 하지만 워낙 토박이 부자들이 많아 매물이 안 나오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지도 않고, 집값 상승이 가파르지도 않은 편이다. 최 전 대통령집은 서교동 일대에서는 그리 고급주택에 속하지 않는다. 취재 중 만난 동네 토박이 주민은 “인근 주택 중 가장 허름한 양옥”이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최 전 대통령은 지극히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대통령 가장 검소한 생활

최 전 대통령 집 가장 가까운 곳에서 30여년간 수퍼마켓을 했다는 이 모씨의 말을 들어보자. “어른은 돌아가실 때까지 고무신을 즐겨 신었다. 그 부인은 새 그릇을 쓰지 않고 양은 냄비를 수십 년째 쓰고 있어서 한번은 그 양은 냄비를 빌리러 최 전 대통령집에 갔었던 적도 있었다.”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교동 집.

그의 사후, 집에서는 50년 가까이 쓴 낡은 선풍기와 양은 냄비가 발견됐다.

지난 10월 26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렸던 최 전 대통령의 국민장에서 한명숙 국무총리는 “고인은 오래전 강원도 탄광촌을 방문하신 후 석탄 노동자의 고생하는 모습에 평생 연탄을 때겠다고 한 약속을 끝까지 지켰다”는 내용의 조사를 했다.

실제 최 전 대통령은 부인 홍기 여사가 작고한 2004년 7월 이후에 집수리를 하고 그 직전까지는 연탄보일러를 사용했었다. 홍기 여사는 2004년 7월 최 전 대통령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홍 여사는 알츠하이머로 수년간 투병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 왕래가 뜸한 가운데 최 전 대통령은 부인 곁에서 극진히 간병을 했고, 부인을 떠나 보낸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2년여만에 세상을 떠났다.

집 앞 경호인력은 다른 전직 대통령에 비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1~2명이었다. 동네 주민들은 “작고하기 전에도 다른 전직 대통령에 비해 최 전 대통령의 경호인력은 극히 적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서 ‘DJ 집 아방궁’ 공격

최 전 대통령 집과 가까운 동교동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집은 전직 대통령 집들 중 가장 비쌌다. 공시지가는 15억5000만원, 시가는 19억3000만원 정도. 하지만 인근 부동산업자 말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 집은 30억~40억원 정도 가치는 족히 된다고 했다.

▶전시장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집.

이 집은 2002년 증축 당시 한나라당의 맹공격을 받았었다. 수십 억원대에 달하는 주택 증축비를 비자금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던 것. 한나라당은 동교동 사저를 엘리베이터와 넓은 정원이 있는 ‘호화 아방궁’이란 표현을 쓰며 당시 땅값을 합쳐 추정 시가가 45억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거동이 불편해 리프트를 설치하고 채광을 위해 1.5평짜리 나무를 심었을 뿐 호화 아방궁은 어불성설”이라고 답변했었다.

한 부동산업자는 “주택마다 공시지가 가격이 모두 시세의 80%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며 “매물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가를 매기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의 집은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집 바로 옆에 김대중도서관이 붙어 있다. 이 도서관은 연세대학교 소유로 2003년 11월 3일 개관했다. 김대중도서관 때문에 집의 규모만으로도 역대 전직 대통령의 사저 중 가장 거대해 보인다.

서교동·동교동에 이어 전직 대통령들의 거주지로 주목받는 지역이 연희동이다. 연희 1동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집이, 연희 2동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집이 있다. ‘나는 새도 잡았다’는 권세를 누린 두 전직 대통령이 모여 살기 때문일까? 한때 연희로를 ‘연희궁로’로 명칭을 바꾸려다 여론의 비난을 받아 계획을 변경했다는 후문도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희1동 집.

연희 1동 노 전 대통령의 집 본채의 대지면적은 132평. 공시지가는 6억5000만원, 시가는 8억2000만원 선이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본채 옆에 경호원들과 접견실로 쓰는 별관 두 채가 나란히 있다.

연희 2동의 전두환 전 대통령 집은 김대중 전 대통령 집에 이어 둘째로 비쌌다. 공시지가는 12억2000만원, 시가는 15억2000만원 선이다. 본채를 중심으로 접견실과 경호실 등이 둘러싸고 있다. 이 집은 전 전 대통령이 중령 시절부터 살았던 집으로 원래 42평 규모였으나 본채를 중심으로 주변 주택을 사들여 별채를 만들어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본채 명의는 부인 이순자 여사 앞으로 돼 있다.

2003년 국가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 관련 재산 환수 과정에서 별채(시가 6억~8억원)를 경매에 부쳤다(이후 전 전 대통령은 경매로 넘어갔던 별채를 돌려받았다). 이때 본채가 이순자 여사 앞으로 돼 있던 것에 대해 재산몰수를 당하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명의변경이 아니냐는 분분한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본채는 1969년 발행된 등기권리증에 따라 원래 이순자 여사 본인 명의임이 밝혀졌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이양우씨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증언한 내용이다.

“전 전 대통령은 결혼 후 중령 때인 1969년까지 처가살이를 했다. 그런데 그해 군 대선배이자 장인인 이규동씨가 딸인 이순자 명의로 연희동 집을 사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2동 집.

전 전 대통령 집 주변은 전직 대통령들 집 중 경호가 가장 삼엄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사방 골목 입구엔 매일 2개 중대(18명)가 2교대로 서고 있다. 그 골목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인근 주민을 빼고는 일일이 신분을 밝혀야 했다.

철통 경호 덕에 치안은 만점

동네 주민 한 명은 “한창 전 전 대통령이 5·18 광주항쟁을 일으킨 주범으로 몰려 시끄러웠을 때는 집앞 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연일 계속되는 시위로 인근 주민들도 애를 먹었다”며 “지금의 철통 경비도 그 영향에서 완전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은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집에 비해 지리적으로 좀 떨어진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해 있다. 대지면적은 114평. 본채와 별도로 2채는 경호원과 비서들의 숙소로 쓰고 있다. 공시지가는 6억원, 시가는 7억5000만원 선으로 전직 대통령 집 중 가장 낮은 가격이다.

김 전 대통령 집이 있는 곳은 일반 도로와 떨어져 있는 주택가라 평당 520만원 선이다. 부촌에 속하는 동교동이나 서교동, 연희동이 800만~1200만원 선인 것에 비하면 절반가량 낮은 편이다. 하지만 매물이 거의 없는 동교동·서교동에 비해 아파트 등이 들어서며 개발이 활발해 집값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상도동 삼성래미안 3차의 경우 평당 시세는 1800만~2000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 취임하기 훨씬 이전인 야당 시절부터 이 상도동에서 터를 닦았다. 평당 가격은 다른 개발지역보다 낮지만 김 전 대통령이 있는 주거지역은 고급 주택가에 속한다. 전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이던 고 유치송씨 집도 인근에 있다.

유명인들의 집은 해당 지역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게다가 그 유명인이 전직 대통령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지역 주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취재 중 만난 연희동에 사는 한 주민은 “전직 대통령들이 인근에 살다 보니 오히려 개발이 묶여 있어 지역 발전이 안 된다”고 푸념했다. 대신 철통 경호 덕분에 치안은 안심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귀향해 고향인 경남 김해시 북산리 봉하마을에 터전을 잡고 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곳에서 생태계 보전과 청소년 수련운동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비리 없이 고향에 내려가 마음 편히 있는 전직 대통령들이 없고, 전직 대통령 집마다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대해봄 직한 발언이다. 봉하마을에 지을 노 대통령의 집값은 얼마일지 궁금해진다.

박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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