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총리 서울회담을 보고… 전문가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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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하기따라 「북 변화」유도 가능”/북한 새 제안없이 접근자세만 “유연”/몰지말고 원칙은 지켜가며 양보해야
□참석자
강인덕<극동문제연 소장>
서진영<고려대ㆍ정치학>
하용출<서울대ㆍ국제정치학>
▲강인덕 소장=이번 회담은 탈냉전ㆍ탈이데올로기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적절한 때에 개최됐어요.
▲서진영 교수=외부세계의 변화에 남북양측이 어쩔 수 없이 떼밀려 회담을 가졌던 지난 72년과 비교하더라도 이번 회담은 의의가 매우 크지요. 다만 우리측은 북방정책을 통해 미리 준비한 측면이 강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시기적으로 보아도 썩 내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용출 교수=북한도 72년과는 달리 권력계승 문제가 걸려 있고,국제정세의 변화에도 적응해야 할 시기지요.
▲강=회담에서 우리측이 더욱 유연한 태도였습니다. 북한의 연총리는 우리측 강총리를 굳이 「대표선생」이라고 부르던데 이것으로 보아도 저쪽은 아직 평화공존을 완전히 수용할 준비가 덜된 느낌입니다.
○북 상호공존 시사
▲서=72년 회담의 경우 남북의 실력자들이 만났지만 어디까지나 「밀사」형식이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준비단계부터 회담성사까지 일체가 양쪽의 공식기구ㆍ채널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도 신중히 생각한 뒤 회담에 응했을 것이고,비록 실체를 인정한다,안한다는 문제가 있겠지만 회담과정 자체가 이미 「실체인정」을 전제로 한 셈이지 않습니까.
북한으로서는 나름대로 양보내지 손해를 각오했을테고,북한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원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남한에 대한 북한의 기존 태도인 적화통일 내지 대남 혁명전략 등이 수정될 계기가 될 수도 있지요. 또 우리로서는 국내정치에서 통일문제와 정권문제를 상당한 정도로 분리시킨 태도를 보였다는 게 의의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양측 총리의 기조연설은 그간의 자기쪽 주장을 정리해 내놓은 것이더군요. 강총리의 연설이 점진주의적ㆍ기능주의적인데 비해 연총리의 것은 본질주의적 시각이 강합니다.
보다 기본적인 것,즉 「선결문제」에 역점을 두는 거지요. 세계관ㆍ인식론적 차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밖에 우리측이 군축문제를 공식 거론한 점과 북한측이 「먹고 먹히고 해서는 안된다」고 발언한 점은 베트남식도 독일식도 아닌 상호공존을 시사한 것으로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북한측이 「개방했을 때 갖는 취약성」을 공식으로 표현한 것은 개방과 개혁에 대한 위기감을 나타낸 것으로 보여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양측이 기본적인 노선에서는 바뀐 것이 없으나 테크니컬한 면에서는 변화가 엿보입니다. 단계적 군축ㆍ경제교류 등을 함께 거론하고 있고,다만 그 순서에는 기본적인 이견이 있지요.
남북대화에서 고려될 범주를 국내 정권차원,상대방의 체제,양측의 공동관심사,양측간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등 네가지로 나누어 볼때 북한은 우리의 체제문제에 상당이 관심을 두는듯 합니다. 임수경양 문제를 제기한데서도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체제에 대해 거론하기를 매우 자제했습니다.
우리가 국내의 민주화를 더욱 더 자신있게 밀고 나가면 상황은 더 좋아질 것입니다.
▲강=북한은 대화의 전제에 합의한 뒤 문제를 해결하자는 방식으로 체육회담ㆍ경제회담에서도 이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이번에도 「쌍방이 회담분위기를 흐리거나 저촉해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달아 이 문구를 자신들이 자의로 해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둔듯 합니다.
▲서=북한이 국제적 압력등으로 상당히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왜냐하면 첫째,분단은 외세문제이기보다 우리 내부문제라고 그들이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통일과 국제적 환경과의 연결을 차단하려 한 것은 그만큼 외부압력을 의식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둘째로 북측이 연설 벽두부터 유엔가입문제를 들고 나온 점입니다. 이 문제로 그들이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너무 구체적 제안
▲강=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접근자세는 흔쾌한 개방은 불가능하지만 유엔가입문제나 긴박한 국제정세에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속사정이 반영돼 있는 셈이지요.
▲서=남한이 좀더 적극적ㆍ공세적이라면 북한은 전체적으로 수세적 자세를 취한 느낌이 있습니다.
남측의 적극적 자세는 강조돼야겠지만 북측의 수세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노골적 공세 부분은 생각해 볼 점이 있지요.
단독 유엔가입이나 정상회담 제의는 무척 북한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전술로는 모르되 회담목적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며,계속 이 문제로 북측을 공격하게 된다면 정권적 업적의 성격이 짙다는 비판도 받을 것입니다.
▲하=양측의 제안내용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아이디어 경쟁인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불만입니다. 「누구 안이 더 좋은가」를 판단받으려는 것도 아니고… 너무 양자의 차이점이 뚜렷이 드러났지요. 처음 시작이니만큼 의제를 뭉뚱그려 유연하게 풀어나갔으면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강=기조연설부터 양자가 서로의 완성된 합의안을 내놓은 것이 의문입니다.
▲하=서로가 너무 공세적이었지요. 사실 우리의 군축안은 미국과 지역환경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고,북측은 주변환경의 변화압력에 「시간을 벌자」는 생각으로 공세적 방어를 했습니다.
몰려있는 북측을 우리가 너무 몰아가면 문제지요. 「적극적」인 것과 「공세적」인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봅니다.
○70년대 보다 진전
▲강=지켜야할 원칙과 양보해야할 것을 구별하는게 중요합니다. 연총리가 표현을 누구러뜨리기는 했지만 그들의 혁명노선을 명백히 포기토록 해야 하는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당분간 남북대화에서 냉전적 분위기는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그러나 우리측 접근자세가 같은 기능적ㆍ단계적 접근이라도 70년대보다는 훨씬 진전됐다는 평가는 가능할겁니다.
북측도 적화혁명노선이 약화된 듯한 느낌인데 반면 군축이나 핵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격렬한 요구와 반응이 나타나리라 보입니다.
▲강=북의 제안내용에는 새로운 것이 없지요. 5ㆍ24 김일성 시정연설이나 5ㆍ31 포괄적 군축방안,7ㆍ5 허담의 3대방침과 조금도 다른게 없고,회담필요성만 인정하는 수준입니다.
▲서=동감입니다. 그러나 스타일과 자세,형식면에서는 굉장히 유연한 변화가 있지 않습니까.
연총리등 북측 대표단은 당초 우리 예상보다 훨씬 부드럽고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북의 공식입장은 대외적으로 거의 불변이기 때문에 그들의 제안문건을 보고 실질적 변화여부를 논하는데는 한계가 있지요.
오히려 우리가 하기에 따라 그들의 변화를 유도해낼 수 있다는 신념이 중요합니다. 6ㆍ29후 우리의 민주발전을 그들이 내려와 직접 보았다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겁니다.
다만 「북이 어떻게 변해야할 것이냐」하는 우리내부의 전략적 목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동독식이냐,루마니아 모델이냐,소련식 모델이냐. 나는 소련식이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강=고르바초프의 개혁ㆍ개방방식은 사실 어렵고 경제적 변화를 먼저하는 중국식이라도 돼면 다행 아닙니까.
▲하=소련처럼 기존의 엘리트가 주도권을 쥐고 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독일식 흡수통합이나 루마니아식 붕괴형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서=과연 북한내에 그런 변화를 담당할 「대안적 엘리트」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중요하지요.
▲강=군축문제 제기에서 우리측은 사상 처음으로 공식적인 종합안을 내놓았다는데 의미가 있지요. 내용은 유럽식 군축모델로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군비감축의 수순을 제시했는데 그동안 금기시됐던 군축입장을 이제는 더이상 회피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구체적 실천가능성은 별개이지만 말입니다.
▲하=미국관련 부분은 제외되긴 했지만 우리가 제기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이제 우리도 「군축카드」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북측의 군축공세를 피하지 않겠다는 거지요.
북쪽도 경제사정 악화로 가장 하고 싶은게 이 문제입니다.
군축의제가 생겼다는데 큰 의의가 있으나 저쪽이 우리의 범위밖인 핵문제를 걸어놓아 성과를 바로 기대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강=앞으로의 회담 전망을 하지만 양측 모두 회담을 중단시킬 이유가 없어 지속은 되겠지만 성과에 의문이 있습니다. 후속회담인 적십자회담이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됩니다.
○전면적 대화 기대
▲서=범민족대회 무산과정에서 북측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고 정부차원 대화가 불가피하고 더 낫다는 의견이 먹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동안 우리측은 교류ㆍ협력을 중시하면서 그 주체인 민간인 교류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북측은 정치ㆍ군사적 문제를 강조하면서도 당국자간 대화보다 단체ㆍ민간교류를 중시하는 논리적 모순이 각각 있었죠. 이제 당국ㆍ민간인 모두가 함께하는 전면적 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기대해 봅니다.
▲하=소련의 대북압력,우리와 중국간 관계개선 움직임,일소 관계변화 등 동아시아지역의 데탕트 경향으로 회담은 지속되리라 봅니다. 그 가운데 북한은 미 일과의 접촉 가능성을 높이려 할 것입니다.
북측의 국내 분위기도 변화된 우리 모습을 보면서 대남전략을 수정할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서=이번 회담은 「일단 성공」으로 봐도 좋겠지만 양측의 국내적 기대가 커져 부담이 더 늘어난 만큼 쌍방의 성의있는 끈질긴 자세가 계속 요구된다고 봅니다.<정리=노재현ㆍ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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