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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열두 번째 음반 낸 한대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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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진=신인섭 기자]

"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김정일 선생, 여기 앉아요. 우리 같이 소주 한잔 합시다… 랄랄라…." 동요 같은 멜로디에 김정일과 소주 한잔 하는 꿈을 담은 담대한 멘털리티의 가수. 한대수(58)다.

북핵 사태로 어수선한 요즘 다른 가수가 이런 노래를 불렀다면 문제가 됐겠지만, 한대수이기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영원한 자유인'으로 평가받는 그가 '욕망'을 주제로 앨범을 내놓았다. 열두 번째 음반이다.

그 어떤 세속적 욕망으로부터도 자유로울 것 같은 그지만, 끊임없는 창작욕에서는 자유롭지 못한가 보다. 오른쪽 눈에 멍이 든 채로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그는 바로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안개 속을 걷다가 넘어지는 꿈을 꿨는데 바로 침대에서 떨어졌어요. 사는 게 괴로우니 꿈도 괴로운가 봐요. 허허허…."

우리의 운명을 지배하고 있는 '욕망'에 대해 눈을 뜨자는 것이 이번 앨범의 메시지. 하지만 그는 이번 작품이 '난해한 정신병자 음악'이라며 껄껄 웃는다.

"삶이란 게 욕망을 채우며 살다 끝나는 것이죠. 물질욕.명예욕.식욕.성욕 등 욕망이란 끝이 없어요. 우리 삶을 지배하는 욕망에 대해 눈 뜨고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인트로 성격의 첫 번째 트랙 '욕망'은 개 짖는 소리와 여자의 웃음소리로 구성된 40여 초의 짧은 곡이지만, 의미는 상당히 깊다. 힘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세상을 개 짖는 소리로 조롱하는 것이다.

"힘을 앞세워 세상을 개판으로 만드는 남성 지배층을 개로 표현했고, 이를 여자가 요염한 웃음소리로 비웃는 겁니다. 남자를 지배하는 것은 여자라는 의미도 있지요."

모스크바에서 만난 노점상 할머니의 처량함을 떠올리며 만든 '바부시카'(할머니란 뜻),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 에드거 앨런 포에게 바치는 '바다의 왕국' 등에서 그는 쉰 듯한 목소리로 처절함을 토해낸다.

"그의 비참한 생애가 내 인생과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어요. 고독한 성장 과정, 한참 어린 아내, 고통 속에서의 창작활동 등…. 에드거 앨런 포처럼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자극을 받습니다."

'지렁이'는 정신병자가 창밖을 보며 세상을 향해 내뱉는 넋두리다. 가사 전달을 무시하고 느낌만을 리듬에 담은 실험적인 곡. 세상살이가 힘들어 어머니 자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노래다.

록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바닷가에'는 500년 만에 성 관계를 갖는 어느 중년남자의 성적인 환희를 교성 섞인 코러스와 함께 표현한 곡. '대통령'은 "대화의 부재는 비극을 낳는다"는 메시지를 담은 동요답지 않은 동요다.

영화음악감독 집단인 '복숭아 프로젝트'(장영규.방준석.강기영.이병훈)의 앨범 작업 참여는 거장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 베이스.기타.드럼 위주의 사운드에서 탈피, 아코디언.벤조 등의 악기를 도입한 것도 사운드 면에서의 새로운 실험이다.

"사운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음악은 감정을 찔러야 하잖아요. 불륜한 정사를 노래한 '정사'에서 가성을 쓴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자유로운 영혼'으로 칭송받는 그지만, '자유'의 뒤편에 자리 잡고 있는 '고독'은 어쩔 수 없나보다.

"자유로우면 그만큼 더 고독해져요. 물질적 부족도 따라오죠. 노래를 부르지 않고, 뉴욕에서 계속 일했다면 경제적 궁핍은 없었겠죠.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궁핍해졌을 겁니다. 뭐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거죠."

그는 누드예술에 대한 신념을 표현하고자 러시아 출신 부인 옥사나를 모델로 한 누드작품을 앨범 재킷에 담았다.

" '누드=포르노'라는 잘못된 관념에 도전해본 거죠. '욕망'이란 타이틀에도 맞고…. 원래 20대 한국 여성을 찍으려 했는데 섭외가 안 돼서 와이프를 모델로 했습니다. 음반사에서 누드사진을 반 정도 걸러내고, 나머지 사진도 글자로 대충 가려버리니 옥사나가 많이 섭섭해 하더군요."

지금 한대수를 지배하고 있는 욕망은 무엇일까. 의외로 '물질욕' 이란다.

"음반이 어느 정도 팔려야 다음 음반을 만들 수 있잖아요. 앨범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이 필요해요. 그것도 물질욕이라면 물질욕이겠지요. 하하하…"

글=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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