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의『밤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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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시는 사실에 관한 언급이 아니라 진실에 관한 언급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사실에 관한 언급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물리학자가 어떤 천체현상을「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신문기자가 기사에서 어떤 사실을「있는 그대로」보고하는 것도 시라고 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 혹은 시만이 진실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적 진실과 과학적 진실이 어떻게 다른가를 구별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는 오랫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숙제여서 필자와 같은 천학이 당돌하게 판가름할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소박하게 말한다면 이성에 토대한 진실과 상상력에 토대한 진실과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양자는 모두 사실에 준거하여 어떤 진실을 발견해 내러 한다는 점에서 서로 같다.
그러나 전자는 이를 이성으로 해석해 내는데 반해 후자는 상상력으로 해석해 낸다. 즉 시란 그것이 사회건, 인생이건, 사물이건 시인이 하나의 대상을 선정하여 이를 상상력을 통해 해석해 낸 하나의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적 진술은 산문적 진술과 달리 사실보다는 진실이, 이성이나 객관보다는 상상력이나 주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박찬의『밤길』(현대시학 8월호)은 이 달의 발표자들 가운데 비교적 성공을 거둔 하나의 예가 아닌가한다. 순수한 소재적 차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시골의 밤길에 관한 묘사가 주 내용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시인은 곧 그것을 상상력의 차원으로 끌어 올려 어느덧「밤길」에 관한 묘사만이 아닌 인생론적 진실에 대하여 언급한다.
즉 이 시에서 밤길은「인생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인은 사실적 차원에서 달빛이 비치는 시골의 밤길을 보고 있지만 진실의 차원에서는「인생의 길」을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의 시적 비결은 시적 대상인 밤길을 사실적 차원의「밤길」에서 진실의 차원인「인생의 길」로 전환시킨 시인의 상상력에 있다고 하겠다.
화자는 유년시절 오직 달빛만이 교교히 비추며 온 세상이 적막에 싸여있는 밤의 오솔길을 혼자 무서움에 떨며 걷는다. 모퉁이를 돌아서 이제 안심하고 막 동구 앞을 들어서려는 순간, 돌연히 앞을 가로막고 기성을 토하는 두 마리의 도깨비, 어린 화자는 겁에 질려서 정신을 잃는다.
시인은 이 도깨비가 사실은 동구밖에 세워놓은 두개의 장승이외엔 아무 것도 아님을 지적하고있으나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어떤 특정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인간의 경우엔 때로 「허위」가「진실」을 대신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가위눌림」혹은「악몽」으로 비유되는 그러한 상황의 삶이다. 오세영<시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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