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사』 연구 시대 개막|서중석씨 「민족 국가…」 서울대서 첫 박사 학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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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내 역사학계에서 처음으로 한국 현대사를 다룬 박사 학위 논문이 나왔다.
역사학 분야에서 한국 현대사 박사 1호가 된 주인공은 서중석씨 (43·역사 문제 연구소 부소장). 이미 현대사 연구자로 상당히 알려져 있는 서씨는 지난 학기말 서울대 국사학과에 제출한 박사 학위 청구 논문 「해방 후 좌우 합작에 의한 민족 국가 건설 운동 연구」가 통과됨에 따라 8월말 정식 학위를 받게 된다.
한국 현대사 연구는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치학 (정치사), 사회학 (사회사·사회운동사) 등 사회 과학 일부에서 다뤄져 왔을 뿐 역사학에서는 거의 연구가 없었다.
이같은 국내 역사 학계의 현대사 연구 불모 상태에서 서씨의 학위 취득은 「본격적인 현대사 연구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서씨의 논문은 해방 직후부터 정부 수립 직전까지를 광범한 1차 자료를 중심으로 다뤘다.
서씨는 『한국 현대사 자료 총서』 (김남식·이정식·한홍구편), 『자료 대한민국사』 (국사 편찬 위원회편) 등에 수록된 당시의 신문기사를 1차 자료로 활용하면서 좌우 성향이 뚜렷한 기사 내용을 보완하기 위해 『주한미군 정보 일지』, 『미 군사 고문단 정보 일지』, 『주한미군사』 등 최근 영인본으로 출간된 미국측 자료를 참조했다.
또 서씨는 당시 간행됐던 『조선연감』 『조선경제연보』 등 출판잡지, 단행본, 주요인사들의 전기와 회고록, 일제하 총독부와 경무국 자료까지 활용해 1차 자료로 쓰일 수 있는 국내자료를 거의 망라했다.
서씨의 연구 결과가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단편적으로 이루어진 한국 현대사 연구에 대한 실증적 비판이라는 점이다.
서씨는 논문의 서론에서 『기존연구의 검토』라는 항목을 별도로 설정, 지금까지 현대사연구의 주류를 이뤄온 정치학적 연구, 브루스 커밍스의 연구, 소장 연구자들의 진보적 시각을 각각 비판하고 있다.
서씨의 논문은 연구 방법과 성과면에서도 기존의 연구보다 심층적이고 체계적이라는 평을 받고있다.
서씨는 우선 일정 시기를 한정적으로 이론적 실험대상으로 삼은 사회과학적 연구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역사주의적 접근방법을 사용했다. 즉 해방직후 나타난 여러 정치세력의 행동 양태가 이미 일제 치하에서 형성된 조직의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전제하에 일제하 정치 세력의 활동을 해방 후 활동과 연계해 연구했다.
서씨는 또 해방 정국의 주요 세력이었던 사회주의자 연구를 위해 이념과 실천의 상호 관계를 중시했던 그들이 남긴 이론서와 행동 강령을 집중 분석함으로써 겉으로 드러난 정치 행태의 내면을 분석했다.
논문 지도를 맡았던 한영우 교수는 서씨의 논문에 대해 『처음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좌우양극을 지양하고 중도세력을 조명한 시각이 참신하며, 현재적 과제인 통일문제에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평가했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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