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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경찰과 맞선 「박종철」(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고문치사은폐조작에 면죄부가 웬말이냐.』
『고문살인합법화에 종철이의 넋이 운다.』
22일 오전10시10분 서울 홍제3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앞 노상.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강민창전치안본부장 등 경찰간부 4명에 대한 무죄판결에 항의하는 민가협 박종철기념사업회,전민련소속 회원 30여명의 거센 항의시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이번 판결은 5공에 대한 심판을 끝낸 온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5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까.』
구호를 외치며 박군의 사진 피킷을 들고 치안본부 대공분실정문으로 향하려는 일행들.
곧이어 5개중대 6백여명의 경찰이 「20대1」의 막강한 힘으로 진압작전에 나섰다.
방패로 앞을 가로막은 「백골단」의 동심원포위망이 좁혀들기 시작한 20분뒤 관할 서대문경찰서장의 짧은 지시가 떨어졌다.
『실어,』
『아이고 이놈들아,우리 종철이를 너희들이 두번 죽이는구나.』
「닭장차」에 끌려가는 박군의 어머니 정차순씨(57)의 울부짖음. 『야,기자고 뭐고 다 싫어.』 조장인듯한 한 백골단원의 헬밋 뒤에 새겨진 그의 별명인듯한 「코만도」라는 표찰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경찰은 박군의 부모와 이한열군의 어머니 배은심씨(55) 등 30여명을 호송차에 실어 하남시와 마사리 조정경기장부근의 야산 곳곳에 풀어놨다. 「경찰서로 연행조사하겠다」는 서장의 엄포와는 사뭇 다른 결과였다.
6월항쟁의 기폭제로 5공붕괴의 실마리가 되었던 「박종철사건」은 「증거불충분이기 때문에 무죄」라는 판결과 「국민의 심판을 거역한 오판」이라는 엇갈린 주장속에 3년이 넘은 오늘날 또다시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는 느낌이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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