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살아있는 나의 제삿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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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월, 바람이 찬 어느 날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의 예술학부에 90분짜리 특강을 하러 갔다. 연극배우가 강의한다는 것은 '연극적 정직'이라는 거울을 통해 본다면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연극이라는 세계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연극 운동가의 격에는 맞는 일이다.

나는 높은 구두에 연극적인 코디로, 그야말로 배우처럼 차리고 연극 자료들을 구운 CD도 챙겼다.

강의 시작 15분 전. 4백석 규모의 중극장에 도착해 찬찬히 CD와 스크린을 준비했다. 드디어 오후 2시.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계단식 강의실의 빈 의자가 휑뎅그렁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연극은 학생들에게 그토록 소용없는 사이드 디시일 뿐인가? 내가 평생을 바쳐온 연극의 가치가 이렇게 공허한 건가? 이제 연극은 끝났나? 연극배우로서의 내 효용성도 끝났나? 순간 적개심이 일었다. 밀려오는 배신감은 누굴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오직 그 시간, 그 공간의 황당함만이 나를 괴롭혔다.

담당 조교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강의실을 나옴으로써 패잔병이 되자는 나와, 그들을 기다림으로써 자존심을 지키려는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서 나오면 이 게임에서 지는 것 같았다.

10분이 지났다. 조그마한 여학생 한 사람이 들어왔다. 법대 2학년생이란다. 그녀는 내가 공연 중인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볼 예정인데 그 전에 연극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처 보지 못했던 '19 그리고 80'에 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내년에도 그 연극을 할 거라고 말하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을 회복해 갔다.

"좋다. 그럼 나와 둘이 이야기하자. 너만을 위해 강의를 하겠다."

조교는 CD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무대 위의 스크린이 너무 커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때, 강의실 맨 끝에 남학생 한 사람과 여학생 두 사람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지나가다 그저 들렀을 뿐이라는 인문계열 학생이었다. 3시에 강의가 있다는 그들에게 다음 수업에 늦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앞자리에 불러 앉힌 다음 나는 연극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네 명의 청중을 놓고 연극에 관한 나의 오랜 상념을 털어놓자니 마음이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이윽고 3시. 세 학생이 나갔다. 그 사이에 남학생 둘이 더 들어왔다. 그러나 음악만 빼고 미술.영상.연기.연출.무용 등 소위 예술적인 목록들을 망라하고 있는 예술학부에선 정작 아무도 내 강의를 듣지 않았다. 70년대 초 관객 12명을 두고 공연했던 오래 전의 기억이 아프게 떠올랐다.

강의를 마치고 나는 조촐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한 학생은 최근에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았고, 또 한 친구는 오래 전 내가 공연했던 '신의 아그네스'까지 본 추억을 들려주었다. 놀랍게도 그는 거의 10년 전에 본 그 연극의 대사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강의실을 나오는데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기운이 빠졌다. 살아있는 나의 제삿날이랄까, 연극의 제삿날이랄까. 그러나 그렇게 우울한 채로도 강의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를 했다. 학교는 축제 중이었지만 소수의 학생만이 참여할 뿐 끼리끼리 어울려 정보 얻기에만 여념이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얘기였다. 컴퓨터 시대를 사는 그들에게 눈동자를 맞추며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이 아득함. 속도전으로 치달아가는 세대에게 무엇이 진정 가치있는 것일까. 나도 그 답을 모르겠다.

박정자 연극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