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철거민 생활 소설 쓰고도 남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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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화제의 책 『바늘반지』펴낸 원명희씨/두살때 소아마비… 밑바닥 전전/맞춤법 몰라 여교사 도움받아 집필/하늘이 지붕 뜬눈밤샘은 일쑤
빈곤과 무지,범죄속에서 방황해온 한 철거민이 고난에 찬 삶과 투쟁을 소설로 엮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6월초 철거민들의 분노와 저항을 다룬 장편 『바늘반지』(하늘땅간)를 출간한데 이어 최근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인신매매된 어부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을 중편 『먹이사슬』로 발표한 원명희씨(38).
58년 원씨가 여섯살 되던해 목수일을 하던 아버지 원용태씨(70)는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서 부인과 어린 5남매를 데리고 상경,서울 창신동 산1 묘지부근에 흙벽돌을 찍어 움막집을 만들었다. 그러나 당국의 철거가 잇따라 온가족은 하늘을 지붕삼아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두살때 소아마비로 불구가 된데다 국교3학년을 중퇴한 그에게 선택의 길은 정해져 있었다.
12살때부터 어머니(65)를 따라다니며 미장공(도키다시)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넝마주이ㆍ막노동ㆍ하수도치기ㆍ생선장수ㆍ어부 등 안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사회의 밑바닥만 헤맸다.
폭력과 절도의 세계에도 빠져들어 소년원과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사춘기시절 감방안에서 뒹굴어다니는 헌책을 읽은것이 최초의 독서였습니다. 이때부터 빈곤과 불행이 항상 따라다니는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8세때 감방에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은 국민학교시절 영리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의 감수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후로 교도소에만 들어가면 독서광이 돼 소설ㆍ시 등 문학서적 1천여권을 독파했다.
그러나 불운은 그치질 않아 26살이던 78년 중매로 결혼해 장남(11ㆍ국교5) 2남(10ㆍ국교4) 등 두아들을 낳고 한때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그는 86년5월 떨쳐지지 않는 가난 때문에 이혼해야 했다.
그해 세상을 완전히 등질 작정으로 광원모집에 응했으나 불구라는 이유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인신매매를 당하는 형식으로 인천에서 저인망어선인 「대구리배」에 승선했다.
중노동과 매질에 못이겨 두달만에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이번에는 목포에서 진짜로 인신매매단에 납치돼 「멍텅구리배」를 타는 신세가 됐다.
『하루 4시간씩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등 강제노역을 견디지 못해 승선 6개월만인 87년2월말 목숨을 건 탈출에 성공,서울 창신동 산꼭대기집에 돌아갔으나 노부모와 두아들 등 네식구가 살고있는 집에는 구청으로부터 철거계고장이 날아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대째 철거민인 원씨는 1천2백가구의 주민들과 함께 창신동 세입자대책협의회를 구성,총무를 맡았다.
소설 『바늘반지』는 이때의 철거반대 투쟁체험을 엮은 것이다.
투쟁기간동안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그는 세차례에 걸쳐 구속됐고 결국 투쟁은 실패로 돌아가 대부분의 주민은 떠났다. 지금은 원씨를 비롯,27가구만이 그해 10월 옮겨간 창신동 산8 통일공원에서 천막생활중이다.
이후 한때 서울시 철거민협의회 총무직을 맡기도 한 원씨는 지난해 3월 지금까지 학술논문이나 운동권보고서를 통해서만 정리된 철거민문제를 철거민입장에서 정리코자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맞춤법조차 모르는 원씨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전직 고교여교사의 도움으로 1년2개월의 작업끝에 펴낸 『바늘반지』는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6천여권이나 팔렸다.
『철거민생활 등을 통해 격은 세상살이를 그때의 눈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싶습니다.』
이제 소설가로 변신한 원씨는 올해에 해양노동소설을 단행본으로 낸뒤 내년에는 밑바닥 인생의 애환을 그린 『바늘반지』 제2편을 쓸 예정이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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