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명 사진작가 여섯개 코드읽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이름을 대면 "아, 그 탤런트"할 만한 요즘 뜨는 TV드라마의 여주인공. 아름다운 이미지는 그대로인데, 척 보니 눈매가 좀 기형적으로 크다. 바비인형의 눈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이식했는데, 보통 사람의 두배 이상이다. 거기에 빨갛고 노란 형광색으로 바꿔놓은 하이테크 스타일의 머리칼 때문에 '섬뜩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선다. 사진작가 황규태(65)가 보여주는 현대사진의 합성 테크닉이지만, 유전공학 앞날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메시지가 그로테스크하다.

이번에는 옆 코너의 여성 사진작가 박영숙(62). 그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전시공간에서 사진이라는 미디어를 가지고 감행한 깜짝 프로젝트다. 현재 유통되는 돈에 들어있는 세종대왕.율곡.퇴계 등 남성 초상화를 모조리 퇴장시키고 삼신할미에서 허난설헌.나혜석 등을 집어넣은 것이다. 화폐단위도 '원'에서 '샘'으로 바꿔버린 이 작업은 현대여성들을 골라 서울 남산 한옥마을에서 새로 찍은 사진으로 작업한 결과다.

성곡미술관에서 지난 주말부터 선보이는 '여섯 사진작가, 여섯 개의 코드 읽어보기'전 일부다. 앞 이미지들은 테크놀로지.돈을 사진작가들이 독자적으로 해석한 작업. 이들 외에 전시에서는 일(고명근.40).도시(주명덕.63).권력(강운구.61).섹스(민병헌.48) 등이 탐구된다. 이들 주제는 우리 시대 삶을 규정하는 핵심 영역들이다. 사진이란 매체로 그런 종류의 탄력적인 해석작업이 가능할까 싶을 것이다. 가능하다. 이번 전시는 사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작업의 한 자락을 확인시켜준다.

이제 관객들은 그 결과를 즐기면 되는데, 관람 포인트는 '스토리(敍事)가 살아있는 전시'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 복판을 살고 있으면서도 실체가 채 파악되지 않아왔던 복마전 같은 복잡한 켯 속의 삶, 그것 자체가 이번 전시의 주제 아니던가. 이 주제들을 스트레이트 사진(강운구.주명덕)이나 합성사진(황규태.박영숙)으로 처리하거나 '사진+입체'를 시도한(고명근) 작품 등 각양각색이다.

민병헌의 경우 한걸음 더 나간다. 인터넷의 포르노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노골적인 섹스 장면의 이미지들을 여러장 중첩시켜 재조합한 것이다. 단 이것을 의도적으로 우표만한 크기의 흑백사진으로 처리하면서 이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프린트했다. 정갈하면서 선정적이라는 두 얼굴이 드러난다는 평이 붙은 것은 그 때문이다. 스와핑으로 발전하는 우리 시대의 원초적 욕망에 대한 은유이겠지만, 그런 해석은 관객들 몫일지 모른다.

이밖에 흔들리는 도시 이미지를 다큐멘트한 주명덕의 작업, 훼손되는 자연을 통해 이 시대 권력의 난폭함을 암시한 강운구의 작업들은 풍부한 암시로 작용한다. 난파 당하기 직전 파도 끝자락을 움켜쥐려는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떠올려도 좋고,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나라는 선가(禪家)의 명제를 떠올려도 좋을 듯싶다. 문자 장르의 서사와는 달리 관객들이 여백들을 채워나가는 게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내년 1월 말까지 전시. 02-737-7650

조우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