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영화제작자 동구로 몰린다|유명도시가 촬영세트로 둔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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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 할리우드와 서유럽의 영화제작자들이 동유럽으로 몰리고 있다.
서구의 영화제작자들은 막대한 자금을 투자, 동유럽 유명도시의 일부를 통째로 빌려 촬영현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유럽정부와 영화업자들도 외화수입을 위해 이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영화제작자들이 동유럽으로 몰리는 것은 확실한 제작비 절감효과 때문. 할리우드에서의 제작비 3분의1만으로 같은 영화를 동유럽에서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업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비용절감의 일차적 요인은 인건비와 제작 기기 사용료가 주를 이룬다. 헝가리·폴란드·체코 등지의 인건비는 미국이나 서유럽보다 절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주요 스태프 몇 명을 제외한 많은 보조스태프와 엑스트라를 현지 동원한다.
비교적 우수한 수준임에도 놀고 있는 제작 기기를 빌려쓰는 것도 큰 비용절감이다. 전통적으로 동구의 영화산업은 국가보조를 받으며 우수한 문화영화를 제작해왔다. 그러나 최근 민주화로 영화계에도 시장경제원칙이 도입되면서 국가 보조가 끊어져 많은 제작업체들이 예산부족으로 영화제작을 못하고 있는 실정. 이에 따라 동구의 영화제작업체들은 서구에서 온 제작 업자들에게 기기를 대여해주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동구의 도시가 서구 영화업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낡았지만 고풍스런 도시분위기가 20세기 초 뉴욕이나 파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동구에서 촬영된 영화의 대부분이 19세기 말∼20세기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난봄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촬영된 『조세핀 베이커』(The Josephine Baker Story)는 50년 전 뉴욕의 빈민가가 배경이었다. 당시 영·미 합작 영화제작사는 부다페스트거리를 50년 전 뉴욕 뒷골목으로 감쪽같이 바꿔 헝가리인들을 놀라게 했었다.
단지 「아스토리아 호텔」·「콜럼버스 거리」등 간판을 내걸고 거리표지를 영어로 바꿔 달았으며 40년식 포드자동차와 허름한 쓰레기통 몇 개를 소품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그런데 도 전체 도시풍경 덕분에 완벽한 50년 전 뉴욕 빈민가가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같이 거리 일부를 통째로 촬영세트로 활용할 경우 서구 영화제작자들은 복잡한 뉴욕도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원 통제 서비스까지 받을 수 있어 금상첨화. 서구 제작자들은 외화수입을 위해 자신들을 환영하는 동구정부의 협조로 행인이 통제된 실제도시의 거리를 수백만 달러를 들여 만든 대형세트처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 제라르 데파르뒤에게 남우주연상을 받게 했던 『시라노 드 베르제락』과 베를린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뮤직박스』는 지난해 헝가리에서 촬영된 대표적 작품들. 헝가리국립「마필름」사는 작년 한해동안 8편의 외국영화 제작을 지원해주고 9백만 달러의 외화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이밖에 83년 제작돼 국내 개봉되기도 했던 『아마데우스』는 체코 수도인 프라하에서 바로크풍의 거리풍경을 살려 촬영됐으며, 앤드류 로이드 웨이버 작곡으로 유명한 오페라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도 체코에서 영화화 될 예정이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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