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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논술 비중 확대 해야 한다 vs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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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24일 국회 교육위원회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선 서울대가 2008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논술 비중을 크게 높인 데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에게 논술 확대 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전교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사실상 본고사이며, 사교육을 부추긴다"고 비난해 왔다. 그러나 이 총장은 이를 거부했다. 한나라당은 너무 심한 정부의 입시 규제가 불러온 결과라는 입장이다. 서울대 입장과 비판론을 들어본다.

2008학년도 서울대 입학전형은 지역균형 선발전형, 특기자 전형, 정시모집의 세 가지로 구분돼 있다. 선발 인원은 세 전형이 비슷하게 조정된다. 입학전형에서 가장 큰 관심은 논술고사에 대한 것이다. 선발 인원이 대폭 줄어든 정시모집에서 논술고사 비중을 늘린다는 것과 예시 문항은 이미 지난해 발표됐다. 논술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이유는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논술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공교육에선 논술을 준비할 수 없으므로 사교육을 조장하고 공교육은 더욱 황폐화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논술이 본고사인가, 아닌가'라는 비생산적인 논란과 달리, '논술이 공교육의 질적인 정상화를 이뤄낼 것인가, 아니면 사교육만 조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 공교육의 의미를 되새겨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대학은 역동적인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사고력을 갖춘 학생, 상황에 맞게 지식을 변형.조합해 주어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고 싶고, 그런 인재로 교육하려 한다. 7차 교육과정의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에는 일선 고교의 현실이 너무나 열악하고 수업 방식도 획일적인 틀 안에 갇혀 있다. 경직된 학교 문화와 지나친 행정 부담,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는 체계는 교사들의 손발을 제약한다. 이 상황에서 고교는 논술을 새로운 부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논술을 하지 말고 공교육 황폐화의 악순환 속에 우리 자녀들을 놔둘 것인가. 논술이 옳은 방향이라면 교육 주체들이 다같이 협력해 논술이 고교 현장에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할 것인가. 답은 자명하다.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청은 일선 교사와 학교에 더 많은 재정 지원을 하고 행정 부담을 경감하는 방법 등을 통해 논술 교육의 여건을 조성해야 하며, 대학은 교과서에 근거해 문제를 출제해야 한다. 그리고 고교 선생님들은 논술이라는 별도 과목을 만들 것이 아니라 개별 교과목의 수업 방식을 상호소통형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서울대는 '언어는 상호소통을 위한 수단일 뿐인가'라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식 논술 문제를 내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논술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문제를 통해 학생들이 교과 과정에서 배운 각 교과의 지식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해 논리를 전개하는지를 평가한다. 한 예로 그저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거론됐던 예시문항은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존 로크의 소유권과 사회계약에 대한 설명을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정보 특성과 연결시켜 과거의 절대적 소유권 개념이 공유를 지향하는 인터넷 정보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이 문항은 교수들도 풀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시민윤리 교과서 137쪽과 도덕 교과서 7쪽에 동일한 문항과 설명이 있다. 교과서를 잘 읽은 학생이라면 대학이 원하는 답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논술은 사교육의 족집게식 암기로는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교육 주체들이 합심해 잘 가꾸어 가면 논술은 공교육 정상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신원동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전문위원


서울대가 2008년 대입에서 도입하기로 한 통합논술은 문제점이 많으므로 반드시 철회되고, 2008년 입시안은 보완돼야 한다. 서울대는 내신으로 뽑는 지역균형 선발, 토플 만점자.경시대회 우수자 중심인 특기자 전형, 내신.수능.논술이 중심인 정시 전형 등의 선발 인원을 같게 하는 등 다양하게 선발하니까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언뜻 일리 있는 것 같지만 서울, 특히 강남 지역 고교와 특수목적고 중심 입시를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서울대가 지역적.경제적 교육환경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도입한 지역균형 선발 결과 52%가 수도권 출신이었다. 국정감사 결과 특기자 전형의 경우 절반은 강남 지역이나 특목고 출신이었다. 현재 특목고 학생은 전체 고교생의 5% 정도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세계적인 대학인 하버드대와 브라운대는 최근 입학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획일적으로 구성돼 있자 입시안을 변경하고 있다는데, 서울대는 역행하는 것이다.

이같이 특기자나 지역균형 선발은 일반 학부모에게 그림의 떡이어서 통합논술 중심 정시 전형에 많은 관심이 쏠려 있다. 서울대가 뭐라고 설명하든 대다수 학부모.교사.학생은 통합논술을 본고사라고 생각한다. 내신을 40% 반영한 2005년 대입의 경우 내신 실질 반영률이 2.28%에 그쳤다. 그렇다면 당락에 필요한 점수는 무엇으로 대치되는가. 내신 성적을 50% 반영한다는 2008년 대입에서도 내신 실질 반영률이 2.8%를 넘지 못한다는 세간의 분석은 통합논술의 중요성을 증명한다. 더구나 2008년 대입의 통합논술 반영률은 30%여서 학부모들은 궁금해 한다. 그런데 서울대는 입시 노하우를 주장하며 최고점.최저점.원점수를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자료 요구와 기본점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서울대는 내년 3월까지 난이도를 조절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때까지 학생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고교생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제대로 알고 통합논술 시험을 시행해야 하지 않는가. 서울대는 통합논술로 입시교육 방향과 판도를 바꾸어 보겠다는 오만과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대는 고교 교사 논술 연수계획을 들먹이고 있지만, 고교 교사들 가운데 얼마를 연수시켜 2008년 논술시험을 대비하게 할 수 있겠는가. 서울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학부모들은 학원 전략에 놀아나는 것을 알면서도 학원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비싼 돈을 들여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요즘은 논술학원에서도 고교 내신성적표를 가져오라고 한다. 통합논술은 성적 우수자 가운데 '명품' 논술을 등장시키고 초등학생부터 어려운 철학과 전문서적을 독파한 준비된 수험생들을 양산할 것이다. 현재 음대.미대 입시를 학교에서 준비해 주지 못하는 것처럼 통합논술은 뜻밖의 소모적인 사태를 가져올 수도 있다. 서울대는 1999년부터 올해까지 두뇌한국(BK)사업을 통해 5000억원을 지원받았다고 한다. 국립대로서 그 많은 정부 지원을 받고도 법 위에 군림하며 아이들을 입시 삼중고로 몰아넣는 서울대는 당장 통합논술을 철회하고 공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 입시안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 명신 함께하는 교육 시민모임 공동회장·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