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범" 수배 중 유럽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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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울 역삼동 국민은행 개인금융(PB)센터 권총강도 사건의 범인 정종국(29.사진)씨는 올 7월 경찰이 6건의 사기혐의로 수배를 내린 상태였지만 8월 24일 3달여 유럽여행을 마치고 버젓이 공항을 통해 귀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23일 "출입국 기록을 조회한 결과 정씨는 5월 22일부터 8월 24일까지 체코 프라하를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며 "하지만 정씨에 대해 출입국 관련 조치를 내리지는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입국 시 공항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전북 지역 모 대학 경영학과를 2001년 졸업한 정씨는 그해 인터넷 거래에서 사기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집유 2년)을 선고 받은 것을 시작으로 잇따라 8건의 사기.절도 행각을 저질렀다. 정씨의 범행은 서울.경기.전북 등 전국이 무대였다.

인터넷에서 컴퓨터 관련 제품을 싸게 판다는 광고를 내고 돈을 입금 받은 뒤 잠적하는 게 주된 수법. 렌터카를 빌려 번호판만 바꿔 중고차라고 속인 뒤 되팔고 자동차 동호회에서 카 오디오 등을 팔겠다며 돈을 받고 도주하기도 했다.

경찰은 "전주에서 공무원으로 있는 정씨의 아버지가 그동안 아들의 사기행각을 무마하기 위해 합의금 명목으로 많은 돈을 썼다"며 "최근엔 아버지와도 사이가 틀어져 왕래가 끊기자 목돈을 마련하려 강도 행각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씨에 대해 특수강도와 절도 혐의로 이날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허점 드러낸 실내사격장 관리=정씨가 실내사격장에서 손쉽게 권총을 훔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허술한 사격장 관리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정씨는 18일 오후 9시30분쯤 서울 양천구 목동의 실내사격장에서 권총 1정과 실탄 22발을 훔쳤지만 업주가 신고한 것은 다음 날 오후 1시30분쯤이었다.

특히 사격장 업주가 실탄이 없어진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장부를 조작했지만 경찰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20일 권총강도 사건이 나고서야 부랴부랴 업주를 추궁해 실탄 분실 사실을 파악했다. 업주는 자신이 직접 8발을 쏜 뒤 장부에 30발을 쏜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없어진 실탄을 은폐하려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실내사격장은 전국적으로 18곳에 이른다. 경찰은 매달 정기적으로 총기류와 실탄 현황은 물론 근무 실태와 소방.환기 시설 등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업주나 종업원이 장부를 조작할 경우엔 얼마든지 실탄이 빼돌려질 수 있어 보다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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