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왕따'로 전락한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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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국보다 한국이 대북한 제재에 더 비협조적이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한.중.일 및 러시아 순방 외교를 결산하는 서방 언론들의 평가다. 로이터 통신은 "라이스 장관은 당초 중국이 가장 비협조적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중국이 크게 변한 것을 실감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군사 동맹인 한국이 미국의 요청을 거절했다"며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 외톨이"라고 썼다. 북한 핵실험 이후 정책 혼선을 거듭해온 한국 정부에 대해 국제 사회의 평가는 이제 한 방향으로 정해진 듯하다. 포용정책을 지키기 위해 홀로 몸부림치는 '왕따'로 말이다.

유엔의 대북한 제재 결의가 채택된 뒤 1주일여 만에 내려진 평가다. '강경 제재가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며 우유부단하게 정책 결정을 미루는 한국 정부의 속내가 들통난 것이다. 이런 평판이 굳어지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는 갈수록 취약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제재 결의 이행을 감독하는 유엔 대북한제재위원회와 같은 국제 기구에서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은 우리에게 가장 크게 제기된 안보 위협이다. 그런 위협을 당하고도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한국은 영원히 북한의 위협에 떠는 볼모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그런 미래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이 중요하다. 핵 위협 앞에 자주국방은 공염불(空念佛)인 것이다. 그러기에 지난 주말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핵우산의 구체화'를 구걸한 것 아닌가.

이 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는 절대 안 된다"는 원칙을 거듭 천명해 왔다. 그러나 행동은 이 원칙을 외면하고 있다. 이미 파산(破産)한 포용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수사(修辭)는 원칙에 맞게, 행동은 신중하게' 정도의 지혜라도 발휘하길 바란다. 북한에 대한 영향력은커녕 국제 사회의 신뢰마저 모두 잃고 무시만 당하는 '게도 구럭도 잃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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