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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불투명성이 '도박 공화국'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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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 두 달여 동안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는 온 국민을 분노의 바다에 빠뜨렸다. 무엇 때문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사과하는 사태로까지 비화했을까. 그것은 자동차 브레이크와 같은 기능을 하는 산업 규제 정책과 액셀러레이터 기능을 하는 육성 정책이 적정한 조화를 잃어 국민과 게임산업 모두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정책 실패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발생시킨 본질적인 정책 실패 원인은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결여된 데 있다. 정부의 중요한 규제 정책을 변경할 때는 규제 관련 전문가들이 사회에 미칠 긍정적 편익과 부정적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규제영향분석 정보'를 마련하고, 이 정보를 고위 정책결정자, 이해관계 당사자 및 일반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공개되면, 규제 정책을 토론하고 변경을 심의하는 과정에 불법적 로비와 압력이 끼어들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중요 규제 정책을 변경할 때는 변경된 정책안과 더불어 반드시 규제 영향 분석 결과도 함께 제출하도록 제도화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국 환경청(EPA)의 경우 '국가환경 경제센터'라는 내부 싱크탱크에 환경경제학 전공자 등 30여 명의 관련 분야 전문가가 규제 관련 실무부서 공무원들과 함께 규제 대안 및 대안별 규제 영향 분석 결과를 마련한다. 특히 최종 분석 결과는 60일 이상 연방등록부에 공포하도록 제도화돼 있다. 따라서 관련 전문가, 이해관계자, 일반 국민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용하는 정보들을 투명하게 공개.검토하게 함으로써 부당한 압력 소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셈이다. 관련 전문가의 참여로 규제 영향 분석시스템이 가동되면 안전한 육성적 규제 대안까지 마련할 수 있다. 가령 '바다이야기'의 경우 정신의학.사회심리학.게임산업학.경제학.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동 작업팀을 구성해 적정 규제 대안을 탐색하고 영향 분석을 하게 된다. 액셀러레이터에 민감한 고성능 엔진이 있어야 승객을 빠른 속도로 모실 수 있기 때문에 고성능 엔진 기능을 하는 육성 대안을 마련하는 한편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위해 고성능 브레이크 기능을 할 규제안을 만들며, 영향 분석을 통해 적정한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게임산업의 사회적 안전망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게임산업 자체가 한국인 기질에 맞고, 현재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비즈니스모델로서 21세기 한국형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산업 규모는 8조600억원(2005년)에 이르고, 게임 수출액은 한국 영화 총 수출액의 10배에 달하는 데다 2005년 성장속도가 전년에 비해 무려 두 배가량 증가하는 등 21세기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주력산업이다. 기본적으로 게임 등 대부분 지식산업은 사행성 등의 부정적 요소와 고부가가치라는 긍정적 요소를 함께 공유하고 있어 규제 경보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이 시스템의 효과적 운영을 위해선 규제 영향 분석시스템의 역량을 구축해 규제 대안과 영향에 관한 규제 정보를 동시에 산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행성 등의 부정적 요소는 사전에 예방하고 고부가가치 긍정적 요소는 적극 개발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는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 '규제 경보시스템'의 확립이다.

노화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정책학

이상희 리인터내셔널 IP&LAW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