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교양강좌 「토론식」으로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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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여성단체에서 실시하는 교양강좌나 교육 프로그램이 강사위주의 강의식에서 참가 수강생들의 대화와 토의가 중심이 되는 「토론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같은 토론식교육은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각기 다른 경험이나 의견을 발표함으로써 수동성을 탈피할 수 있고, 특히 지식을 확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9시 한국 여성 노동자회가 주최한 토론마당.
낙태와 피임에 관한 교육용 비디오 『침묵의 절교』 『자연피임법』이 상영되고 난 뒤 40여명의 사무직·생산직 여성 근로자들은 몇 팀으로 나눠 둥글게 둘러앉았다.
『오늘 비디오를 보고 나니 낙태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들 스스로가 태아도 지키고 자기 몸도 돌봐야될 것 같아요.』
『주위의 친한 친구가 임신7∼8개월이 될 때까지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라 고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성교육을 시켰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자라나는 세대들은 중학교 때부터 성교육을 시켜야해요.』
『퇴폐적인 우리의 성문화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저는 생산직 근로자인데 TV외엔 즐길만한 문화생활이 없어요. 그런데 TV에선 자주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쏠려요.』
둘러앉은 참가자들이 한마디씩 느낌을 이야기한 뒤 한 참가자가 낙태 발생의 근본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한다.
이날 토론마당에 참가했던 윤미숙씨(23)는 이 같은 소그룹 토론이 곰곰이 생각할 기회를 만들어주며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새롭게 느낄 수 있어 계속 참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단체에서 이같은 교육방식이 최초로 시도된 것은 지난 79년부터.
주부 아카데미가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실시하면서 여성들에게 수동성을 탈피하고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기 위해 시도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고 얼굴이 빨개져 말을 잘못하거나 아니면 중구난방식으로 떠들지요. 그런데 조금 지나면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훈련이 되어 본인들도 놀랄 지경이 됩니다.』
『여성들의 잠재력 개발을 위해서는 이런 교육방법이 매우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임희경 주부 아카데미 협의회장(53)은 『토론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연대감이 형성돼 분위기도 화기애애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주부들의 경우 가정에만 파묻혀 있어 사회문제나 역사의식 등은 자신과 거리가 먼 문제로만 생각하게 되나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이런 주제에도 관심을 갖게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인다.
한국 여성 노동자회는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을 여성의 날로 정해 영화·슬라이드 감상 후 토론 마당을 벌이고 있다. 그 외에 한국 여성민우회, 또 하나의 문화, 한국여성개발원의 중간지도자 연수교육 등도 강사의 강의 후 별도의 토론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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