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현대 미술 흐름 한 눈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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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그동안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 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규모의 소련 현대 미술전 「칸딘스키에서 페레스트로이카까지」가 7일부터 31일까지 호암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소련 아방가르드(전위 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로부터 현재 소련의 대표적 화가들에 이르기까지의 작품이 한꺼번에 선보인다는 점에서 미술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지난 88년12월 현대 백화점 미술관에서 소련 라트비아 공화국 화가 12명의 작품 20점이 전시되었을 뿐 이번처럼 소련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중앙일보사와 소련 문화부가 공동 기획한 이 전시회에는 20세기 소련의 대표적 작가 33명의 유화작품 84점이 출품된다.
이 전시작품들은 레닌그라드 국립 러시아 박물관을 비롯해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화랑 등 소련내 유명한 미술관·화랑들이 소장해온 것들이다.
이 전시회는 20세기 초 러시아 작가들에 의해 제창되어 전 세계에 보급된 아방가르드 운동, 즉 추상주의·절대주의·구성주의·신원시주의의 대표적 작가들과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를 맞아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오랜 「통제」에서 벗어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열에 나선 현존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보여 준다.
출품작가들은 칸딘스키·말레비치·로자노바 등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의 대표적 작가들은 물론 빅토르 소로킨(78)으로부터 이리나 오를로바(25)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현존 작가들이 총망라됐다.
소련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바실리 칸딘스키(1869∼1944)에 의해 시작되었고 전 세계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10년 뮌헨 정착시절, 사상 최초로 추상회화(수채화)를 제작·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초기의 작품활동부터 현실세계의 대상을 모방하기를 거부하고 실제를 제거한「인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아방가르드 운동은 이후 카시미르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올가 로자노바의 구성주의, 미하일 라리오노프의 신원시주의 등 다양한 유파를 형성해 나갔다.
말레비치가 주도한 절대주의는 감각적 대상에서 해방된 순수한 감성적 세계를 회화화했다. 그는 평면적인 기하학적 구성과 풍부한 색채로 충격적 효과를 자아냈다.
구성주의 화가들은 새로운 조형성의 실험을 추구했으며 신원시주의 화가들은 원시적이고 토속적인 세계와 근대미술의 접목을 시도했다.
이처럼 다양하게 꽃피기 시작했던 소련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예술을 정치적으로 기능화하고 도구화하려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정책에 의해 억압받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회화 이외에 포스터·무대장치·광고디자인 등 분야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운동의 정신은 그후 모든 소련미술가들의 작품 속에 잠재되어 왔으며 60년대 흐루시초프시대 이후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소위 제2의 아방가르드시대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소련 미술평론가 레베데바씨는『오랜 억압으로 소련의 아방가르드운동은 크게 변질되어 왔다』고 전제하고『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아방가르드 운동 사이에는 분명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소련 미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미술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서 서구 미술계로의 적극적인 진출과 참여를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경향은 올해 이탈리아 프라토시의 루이지페치 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소련 현대 작가전」에 참가한 작가 12명의 작품이 대부분 설치 작품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이번 전시회는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의 대표작들과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작품을 비교 감상함으로써 소련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로 평가된다. <이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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