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통령제 떠오르다 쏙 “잠수”/여름잠 정가 미묘한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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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 협상카드 해석­민주 “속셈 뭐냐” 의심/평민 의혹 눈길에 “평소 소신 말한 것” 발뺌/박철언씨 비슷한 주장… 개편 2탄 추측도
김대중 평민총재의 「부통령제 개헌론」으로 새롭게 점화되는 듯했던 개헌논쟁은 평민당측이 이를 「평소 주장」이라고 후퇴시키는 바람에 한풀 꺾인 상태다.
그렇지만 내면적으론 민자당의 각 계파는 김총재의 속셈을 자기쪽 구상에 맞춰 따지고 있고,야권통합의 한쪽인 민주당은 이를 경계하고 나서 내각제 개헌구도와 맞물려 개헌논쟁은 미로를 헤매는 느낌.
여기에다 김총재의 주장이 박철언 전정무장관의 최근 지론인 「순수내각제가 아니면 순수대통령제」와 맥이 통하는 대목이 있어 하한기를 넘기면 언제 다시 돌출할지 모르는 잠복 이슈가 되고 있다.
○…민자당은 「부통령제」의 대처방안을 놓고 「내각제로 맞불을 놓자」는 쪽과 「여권교란용이니 묵살하자」는 의견으로 나뉘었으나 딱부러진 대응을 서둘 필요가 없다는 게 현재판단.
30일 김종필최고위원 주재의 당직자회의에선 조목조목 논리적 반박을 펴 사실상 거부의사를 나타냈지만 당론결정을 유보,여운을 남기려는 자세.
박희태대변인은 『김총재 제안은 개헌논의를 앞세워 국회복귀를 위한 협상용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과민반응을 보이면 이를 거둬들일지 모른다』며 『이를 감안해 일단 논리적 대응만을 해둔 것』이라고 설명.
말하자면 차제에 내각제와 부통령제 신설개헌에 의해 동시논평을 벌여 개헌국면으로 넘어가는 적극대응론이나 국회복귀를 위한 협상제스처로 성급히 해석하는 것 모두 적절치 않다는 것.
여기엔 계파간의 미묘한 시각차가 깔려있기 때문인데 민주계는 김총재가 대통령 직선제쪽으로 한밭 더가 내각제와의 결별을 굳혔다는 측면에서 해석하려하고 있고,공화계는 김총재의 발언을 개헌정국의 조기개막 가능성 쪽에서 활용가치를 탐색하는 기색. 민정계는 『우리 당에 혼선을 주려는 것』(박준병총장)이라고 원론적인 경계론을 내세우고 있으나 민정ㆍ공화계 내부엔 맞불론도 만만치 않은 실정.
김영삼대표는 황병태의원을 통해 『개헌국면으로 넘어가면 남북ㆍ민생문제 등 현안을 다룰 수 없다』고 논쟁자체를 거부하고 있고,김종필최고위원은 『가볍게 대응하라』고만 지시해 대조.
다만 김총재의 「실권있는 부통령」제를 새로운 형태의 2원집정부제라는 비판에선 일치.
박대변인은 『최고권력을 분점케하는 것은 대권의 속성상 불화와 반목을 초래한다』고 했고 김용환정책위의장은 『자신들의 2원집정부제는 옳고,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2원집정부제는 장기집권 음모냐』고 공격.
○…김총재의 부통령제 도입제안이 개헌흐름에 미묘한 파장을 계속 던지고 있는 것은 박철언의원의 최근 주장 때문.
박의원은 김대표가 내각제 합의각서를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나온 지난 6월말부터 『순수내각제로 가든지,그럴 수 없으면 현행헌법을 미국식 순수대통령제로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
박의원의 이런 입장은 청와대ㆍ민정계 핵심에서 내각제 개헌포기의 대안으로 순수대통령제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유발해 온 게 사실. 여기에 박준병총장이 총재자유경선을 강조하고 나서 민정계의 대권후보 양성여부가 한쪽에서 관심을 끌어왔다.
김총재의 부통령제 도입주장도 이런 흐름을 읽고 자신의 대권구도와 연결지어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으며 이른바 제2의 정계개편론과 상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도는 형편.
정가일각에선 신중하기로 소문난 이기택 민주당총재가 갑자기 김대중총재의 조기야권통합 쪽으로 달려간 것은 이같은 기류를 과잉해석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박의원은 김총재의 주장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김총재의 진의를 알지 못하고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답변을 회피.
김총재의 주장인 결선투표제와 부통령의 「실권」에 대해선 박의원이 반대입장이어서 분명한 간격이 있으나 지역감정해소ㆍ후계구도 설정을 내세운 접근자세는 일반론에선 비슷.
○…김총재의 부통령제도입ㆍ대통령결선투표제는 김태식대변인의 설명대로 새로운 것이 아니나 무게중심의 차이가 나고 내용상 진전이 있는 것도 사실.
여소야대의 제1야당시절엔 결선투표쪽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번엔 「실권있는 부통령」을 내세워 부통령쪽에 비중을 두는 인상.
「국무회의의 부의장」이 될 수 있도록 한다는 힘있는 부통령 등장얘기로 김대중ㆍ이기택 러닝메이트 밀약설이 확산되었고 이로인해 김대중총재의 대권에 대한 집념이 다시 부각되는 바람에 야권통합의 속도감을 더욱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유발.
통합문제로 내부진통중인 민주당측은 『김총재의 발언은 의원직 총사퇴의 의미를 훼손시키고 개헌논의를 촉발시킬 우려가 있고,야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
분위기가 이상하게 번지자 평민당은 『등원협상용이 아니고 다음 총선때 내놓을 당론』이라고 발을 뺐으나 「복선」이 많이 깔린 것 같다는 게 중론.
부통령제 개헌론은 결국 국회복귀를 위한 대여 협상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는데 박대변인은 『의원직 사퇴는 당초 김총재의 지난 임시국회 대책에 없었던 것으로 사퇴를 결행하다보니 개헌론도 덩달아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해석.
민자당측은 김대표가 제의한 여야 상설협상개구에서 『일정수준의 개헌문제를 포함,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다』는 태도로 8월하순 대평민협상에 나설 태세여서 부통령제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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