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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레이샤(鎭靈社)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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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본 TV 사극의 단골 소재로 백호대(白虎隊)를 빼놓을 수 없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주체 세력인 신정부군과 구체제인 막부 잔당 간의 보신(戊辰)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극이다. 발단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아이즈(會津)번 와카마쓰 성에서 피어난 한 줄기 검은 연기였다. 성 밖 언덕에서 연기를 목격한 백호대의 소년무사 20명은 성이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진 것으로 오인하고 전원 자결을 선택했다. 열예닐곱 나이였다. 요행히 목숨을 건진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증언한 백호대의 최후는 사무라이 정신의 귀감으로, 충성심의 표본으로 지금까지 내려온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로마 궁전의 돌기둥으로 만들어 보낸 추모탑도 우뚝 서 있다.

하지만 백호대 대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질 수 없었다. 메이지 정부의 입장에선 일왕(天皇)에 반기를 든 조적(朝賊), 다시 말해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의 3걸 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마찬가지다. 그는 막부 정권 타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중앙 정계의 권력투쟁에서 밀렸고 나중엔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켜 정부에 대항하다 자결했다. 일본 각지에 그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절대로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祭神)이 될 수 없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한쪽에 '진레이샤(鎭靈社)' 란 작은 사당이 세워진 것은 1965년이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선 백호대원과 사이고를 모시고 있다. 전란으로 숨진 영령 가운데 야스쿠니 본전에는 모실 수 없는 사람을 기리기 위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이름이 확인 안 돼 본전 명부에 올리지 못한 무명용사나 군인.군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빠진 민간인 희생자도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일본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외국인 영령이다. 걸프전에서 숨진 미군과 이라크인이 합사(合祀)돼 있고 코소보 내전 희생자도 모시고 있다. 물론 유족의 의사는 묻지 않는다. 원칙으론 최근의 이라크 전쟁 희생자도 모셔야 하나, 신사 측이 합사 의식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야스쿠니 신사는 미공개 상태이던 이 시설을 지난주 개방해 일반인의 참배를 받고 있다. "적군을 가리지 않고 위령하는 정신, 세계 각지의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그럼, 전란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이 분명한 A급 전범을 버젓이 본전에서 모시고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