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백호대 대원들은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질 수 없었다. 메이지 정부의 입장에선 일왕(天皇)에 반기를 든 조적(朝賊), 다시 말해 역적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의 3걸 중 한 명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도 마찬가지다. 그는 막부 정권 타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중앙 정계의 권력투쟁에서 밀렸고 나중엔 세이난(西南)전쟁을 일으켜 정부에 대항하다 자결했다. 일본 각지에 그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절대로 야스쿠니 신사의 제신(祭神)이 될 수 없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 한쪽에 '진레이샤(鎭靈社)' 란 작은 사당이 세워진 것은 1965년이었다. 놀랍게도 이곳에선 백호대원과 사이고를 모시고 있다. 전란으로 숨진 영령 가운데 야스쿠니 본전에는 모실 수 없는 사람을 기리기 위한 곳이라 한다. 그래서 이름이 확인 안 돼 본전 명부에 올리지 못한 무명용사나 군인.군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빠진 민간인 희생자도 포함돼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일본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외국인 영령이다. 걸프전에서 숨진 미군과 이라크인이 합사(合祀)돼 있고 코소보 내전 희생자도 모시고 있다. 물론 유족의 의사는 묻지 않는다. 원칙으론 최근의 이라크 전쟁 희생자도 모셔야 하나, 신사 측이 합사 의식을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야스쿠니 신사는 미공개 상태이던 이 시설을 지난주 개방해 일반인의 참배를 받고 있다. "적군을 가리지 않고 위령하는 정신, 세계 각지의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라 한다. 그럼, 전란의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임이 분명한 A급 전범을 버젓이 본전에서 모시고 있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예영준 도쿄 특파원